성장을 위한 새로운 움직임,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
과거와 비교했을 때 우리는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하며 풍족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힐링(치유)을 원합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농촌의 자원을 활용하여 국민들에게 건강과 치유, 교육, 사회적 재활, 고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치유농업'이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의 서비스 대상은 유아와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성인, 노인 등의 '일반 대상'과 문제행동 청소년, 신체적 환자, 사회심리적 환자, 알코올/약물 중독자, 장애인, 수감자, 실업자, 소외계층, 다문화 가정 등의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상 '모두'를 의미합니다. 모두가 치유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치유의 대상이 '모두'라 한다면, 굳이 그것을 '치유'라고 이름 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치유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자연히 병이 있는 환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모두가 치유받기를 원하는 사회 분위기는 사회 구성원들을 환자와 같이 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만들지도 모릅니다.
모두를 위한 서비스라면 '치유'보다는 '성장'이란 말이 어떨까요?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경험하고 배웁니다. 누구나 배웁니다.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 생각하면 급할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성한 곳도 많은데 굳이 아픈 곳만 쳐다보며 우울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요? 치유는 아픈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지만, 성장은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아픔이 있는 사람도 상처가 있는 사람도 똑같은 '누구나'이면 안 되는 걸까요?
꽃길만 걸어요-
도대체 이렇게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나요? 어떻게 인생에 꽃길만 펼쳐져 있을 수 있나요? SNS를 통해 비쳐지는 타인들의 삶은 항상 꽃길 위에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파리 올림픽이 끝나고 제17회 파리 패럴림픽이 열렸습니다. 패럴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장애를 얻게 된 사연도 저마다 다르고 각자가 가진 아픔도 다 다르지만, 자신의 상처를 껴안고도 끊임없이 성장하고자 용기 있게 도전하는 그 모습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잃은 것에 대한 좌절감보다 잃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와 만족의 힘으로 하루하루 피땀 흘려 훈련을 하고 그 자리에 섰을 것입니다.
그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 그 어디에도 '어떠한 문제도 일어나지 않고 기쁘고 웃을 일만 가득한 행복한 삶'인 꽃길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성공'한 이들이 보이는 자신감과 여유가 가득합니다. 성공은 타인이나 사회가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하나하나 성취해 나간다면 그 삶은 성공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꽃길'이라고 적혀있는 인생의 이정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대와 환상을 내려놓으면 삶은 감사와 만족, 그리고 행복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힐링(Healing)말고 그로잉(Growing)
자신을 치유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의존적 이어질 것입니다. 그저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치료받아야 하는 나약한 존재로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자신을 성장의 대상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떠할까요? 왠지 모르게 힘이 나고 실수나 실패도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다 큰 성인이 무슨 성장이야?"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은 평생에 걸쳐하는 것입니다. "다 큰 어른이 왜 저 모양이야?", "그 나이 먹고 어쩜 그럴 수 있어?", "나이를 거꾸로 먹었니!" 하는 한탄의 말을 떠올려보세요. 신체는 이미 어른이지만 마음에는 누구나 어린아이가 살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성장시켜야 하는 존재입니다. 치유가 필요한 존재는 아이가 아닌 환자입니다.
치유는 자신의 현재를 부정에 놓고 시작한다면, 성장은 자신의 현재를 긍정에 놓고 시작합니다. 마이너스에서 시작하는 것과 제로 혹은 플러스에서 시작하는 것은 출발부터가 다릅니다. 당신은 이미 틀려먹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도 성장하는 중에 있는 아이다운 사람일 뿐입니다.
치유받을 생각만 말고 두 팔을 걷어붙이고 성장을 한 번 해봅시다. 우리에게는 그럴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대단한 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알아차려보기를 바랍니다. 웅장한 나무에도 옹이가 있고, 날개가 찢긴 나비도 꽃을 찾아 날아오릅니다. 상처를 탓하며 성장을 포기하는 자연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도 자연으로부터 왔고, 언젠가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자연의 일부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나요? 상처를 탓하며 성장하기를 포기한다면 그 상처는 더 크게 보일 것이고, 상처가 있더라도 힘을 내서 더 크게 자라면 그 상처는 작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니 치유 말고 성장으로 삶을 채워보는 건 어떨까요? 힐링 말고 그로잉으로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 새로운 움직임
교류분석 상담이론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Eco-TA라고도하고, 생태학적 교류분석이라고도 합니다. 기존의 교류분석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를 분석하여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면,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은 기존의 교류분석 이론을 안고 한 걸음 나아가, 자연을 비롯한 모든 환경적 맥락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적응 경험과 적응 능력의 확장을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성장을 돕고자 하는 움직임입니다.
기존의 교류분석은 자아상태를 분석하고, 교류패턴을 분석하고, 심리게임을 분석하고, 인생각본을 분석하여 인간이 얽히고설켜 살아감으로써 벌어지는 문제들을 잘 해결해 낼 수 있는 정보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문제를 해결해 가며 살기보다는 아예 만들지를 않기로 마음먹은듯합니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동물이나 식물을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비난해야 할까요? 통제해야 할까요? 이러한 현상을 비난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결혼하지 않는 성인은 틀렸어",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는 이기적이야", "동물을 자식처럼 키운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어"와 같은 편견을 걷어내고 그들이 어떠한 환경적 맥락 안에서 적응해 왔고 성장해 왔는지를 먼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지금의 세대는 아이의 호기심을 무한대로 허가하는 자연의 품에서 충분히 뛰어놀지 못했고, 핵가족 문화 속에서 단출한 성격 유형만을 경험하며 자랐으며, 높은 교육열로 인해 어려서부터 책상에 앉아 또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홀로 적응해야 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고, 타인이 불편하며 혼자 살아가고, 사람대신 반려동물과 최소한의 정(情)만 나누며 살아가는 것을 어떻게 비난만 할 수 있을까요? 이 세대를 MZ세대라 구분 짓고 계도하려 하기보다,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어떠한 노력들이 뒤따르면 좋을까요? 어떠한 노력들이 이 세대를 다시 성장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를 근거로 하여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