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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란 Oct 26. 2024

불완전함을 안고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힐링(Healing) 말고 그로잉(Growing)으로의 전환



상처가 있지만 성장할 수 있어-


  산책을 하다 보면 옹이가 있거나 구멍이 난 나무, 한쪽 가지가 잘려나간 나무들을 종종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나무들이 잎이 없거나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를 안고도 힘차게 성장하고 뻗어나가는 나무들이 대견하고 아름답습니다. 푸른 잎사귀와 쭉쭉 뻗은 가지들도 있는데 왜 상처 난 자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요?



   심미안(審美眼)은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을 뜻합니다. 자연에 나가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에는 어떠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이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 눈길조차 가지 않았던 잎사귀 한 장이 아름다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중에서


  옹이가 생기고, 구멍이 나고, 한쪽 가지가 잘려 나간 데에는 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희 아이는 지금은 건강하지만 태어났을 때 선천성 기형이 있어서 몇 차례 수술을 했었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 가장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던 것은 아픔이 성장을 막아서지 않도록 키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이제 누구 못지않게 아주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종종 수술 자국을 보면 마음이 아릿하지만 괜찮습니다. 나무 둥치 아래에서부터 상처가 있는 나무도 위로 쭉 뻗어나가고 싱그러운 잎사귀를 무수히 펼치는 모습이 꼭 우리 아이 같습니다. 상처가 눈에 보이기에 욕심부리지 않을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존재 그 자체로도 너는 우리에게 너무 소중한 아이야'하는 마음을 매일 주고받습니다. 눈빛으로, 말로, 몸짓으로 서로에 대한 허가와 인정을 주고받는 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성장한다'는 말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합니다. 쉬지 않고 열심히만 살고자 했던 저에게 아이는 함께 쉬고, 놀고, 여행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존재해도 좋다는 허가, 제 나이답게 굴어도 좋다는 허가, 제 자신의 욕구도 중요하다는 허가, 건강해도 좋다는 허가 등 언제부터인가 잊고 살았던 감각들을 아이를 키우며 다시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저한테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일깨워 주었으니 저는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지를 마음껏 보여주고 싶습니다. 희생하고 돌보느라 웃지 못하는 부모의 모습이 아니라 선택권도 더 많아지고 자율성이 넘치는 주도적인 삶의 희열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용기 있게 경험하고 적은 목표들이지만 하나 둘 성취해 내는 성공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그리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은 힘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나고 멋진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옹이가 있어도 쭉쭉 뻗어 올라 싱그러운 잎사귀를 터트리는 나무들처럼, 생이 사그라들 때까지 살아있음을 즐거워하는 자연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피시스'와 '허가'


  편안하게 글을 이어왔지만 마무리를 하며 이 두 개념만큼은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습니다. 사실 중간중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교류분석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은지, 일반적인 용어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이 옳은지를요. 그래서 가급적 '피시스(physis)'는 성장에의 욕구로 표현을 했습니다. '허가'라는 용어는 다행히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라 큰 고민 없이 그냥 허가로 표현을 할 수 있었습니다.


Berne(1968)은 “유기체가 더 높은 형태로 진화하고, 배아가 성체로 발달하며, 아픈 사람이 나아지고, 건강한 사람이 자신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드는 자연의 생명력(성장력)“으로 피시스(physis)를 정의하였다.


  상처가 있어도 이 나무가 자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나무의 피시스를 인정하면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내가 가르치는 학생, 내가 돌보는 자녀, 내가 만나는 내담자를 볼 때 그들의 피시스를 느낄 수 있나요?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고 존중하고 있나요? 우리는 허가를 통해 그들의 피시스를 인정해주어야 하고, 그들은 허가의 힘을 가득 채워 자율성과 성장이라는 자신의 바퀴를 신나게 굴려나갈 것입니다.


  아래의 그림은 Henn(2023)의 '생태적 허가바퀴'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제가 그대로 만들어본 것입니다. 저는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허가의 힘 확인하기'라는 활동지를 제공하며 이 허가바퀴의 동심원을 자신의 힘만큼 색칠하여 채워보라고 합니다.  


   

2023년 TAJ 논문에 실린 Eco Permission Wheel을 참고하여 작가가 만든 생태적 허가바퀴 활동지의 도안



  참여자들은 색연필로 각각의 허가에 대한 자신의 힘을 색칠해 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장의 욕구를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진행자인 제가 묻지 않아도 "어머, 저는 건강해지기가 30이에요! 제 몸 건강에 대한 스스로의 허가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눈앞에 일을 보며 쉬지 못하고 억척스럽게 일을 했어요. 이제 제 몸에게 사과를 하고 건강을 좀 적극적으로 돌봐야겠어요." 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힐링 말고 그로잉]을 1화부터 지금까지 읽으신 독자님들께서는 한 번 자신의 허가 에너지가 어떠한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동심원의 파이를 칠해보세요. 원의 중심으로부터 한 칸씩, 10-100까지의 양이 있다고 생각하며 각 허가 내용마다 얼마만큼의 허가를 스스로 주고 있는지 점검해 보세요.


  

작가의 허가바퀴



  공개를 잠시 고민했지만, 이해를 더욱 돕기 위해 저의 허가바퀴를 공유해 봅니다. 이가 많이 빠져 있는 바퀴의 모습이네요. Henn(2023)이 TAJ에서 발표한 논문에는 빨간색과 초록색을 명도를 달리하여 표시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과 타인, 세계의 영역을 눈에 띄게 확인하고 싶었고 손수 색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명도를 달리하여 칠하는 것을 안내하기가 조금은 까다로워 특별히 정해진 색은 없이 세 가지 색의 색연필로 칠해 볼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저의 허가바퀴에는 중간중간 이가 빠진 부분도 있지만, '자연이 되기'와 같이 힘이 가득한 허가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로 자연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가 연구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아이와도 친밀한 시간을 보냅니다.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에서 입구를 찾으세요. 그 문을 힘껏 열고 들어가 자신과 연결되고, 타인과 연결되고, 세상과 연결되다 보면 어느덧 나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멋진 '나'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과의 연결을 위한 허가]   

자연이 되어도 좋다.
존재해도 괜찮다.
너 자신의 욕구도 중요하다.
너 자신이 되어도 좋다.
너 자신의 건강도 중요하다.
느껴지는 대로 느껴도 괜찮다.


[타인과의 연결을 위한 허가]

네 나이처럼 굴어도 괜찮다.
타인을 믿어도 괜찮다.
타인과 친밀해져도 괜찮다.
소속되어도 좋다.
중요한 사람이 되어도 좋다.


[세계와의 연결을 위한 허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이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좋다.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도 괜찮다.
내가 성공해도 좋다.
적응하는 것도 괜찮다.  


  이 세 영역의 허가들을 방어 없이 받아들여보세요. '안돼, 위험할지도 몰라', '피곤한 일이야, 그냥 하던 데로 하지 뭐. 혼자도 괜찮아' 등의 방어들이 마음속에서 불안을 머금고 불쑥 자라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은 불안대로 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자신에게 속삭여보세요. '변화가 힘들고 두렵다는 거 이해해. 하지만 해보지 않았잖아? 어때? 너무 많은 생각은 나를 언제나 이 상태로 붙들어 둘 거야. 한 번 해보자.' 하는 용기를 속삭여 보세요. 그리고 허가바퀴들을 생각하며 나의 힘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세요. 자연이 되어 가만히 앉아보면 내 안에서도 피시스가 꿈틀거리고 있음이 느껴질 것입니다.


  너무 강한 피시스였기 때문에 거부되지는 않았는지, 누가 말리지도 않았는데 거부될 것이 두려워 피시스를 꽁꽁 숨기고 살았는지 다시 살펴보세요. 마음껏 내보여도 좋고, 드러내도 좋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가 자신의 생명 속 깊이 존재하는 피시스를 찾아 꺼내보세요. 하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 가고 싶은 것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자신 다워지고, 타인과 친밀하고, 세상과 연결되세요. 그것이 옳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반드시 그러하라고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괜찮다고 허가드리는 것입니다. 선택권은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얼마나 나다워질 것인지, 어떤 사람에게 다가갈 것인지, 세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싶은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힐링(Healing) 말고 그로잉(Growing)


  자, 이제 우리는 성장하기만으로도 바쁜 나날들을 보낼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저앉아 아파하지 말고, 상처를 따뜻하게 품어 안고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어느 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친정 엄마가 쑥 범벅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쑥 버무리라고도 하고 쑥설기, 쑥털털이 등 다양한 말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언 땅이 언제 녹았는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양지바른 언덕에서 하얀 털을 복슬복슬 달고 파릇파릇 쑥이 돋아납니다. 뽀얀 쌀가루에 버무려 쪄낸 쑥범벅을 한 입 먹었더니 쓴맛도 나고 단맛도 납니다. 혀 끝에 도는 알싸한 쓴 맛으로 성난 듯 힘이 돗았고, 달달한 끝 맛으로 희망을 느낍니다.


  허가범벅이라는 표현은 어떨까요? 그냥 문뜩 떠올랐습니다. 지도와 훈련, 훈육, 치료만으로는 도통 힘이 솟지 않습니다. 힘이 솟을 때 그것들은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허가범벅을 통해 일단 힘부터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방법을 몰라서 다들 주저앉아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대고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할 수 있는 데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자 마음먹으면 할 수 있지만, 지금 당장 힘이 부족해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허가가 필요합니다. 허가바퀴의 바퀴 살들이 하나 둘 깨져나가고 빠져버리면 바퀴는 굴러갈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바퀴가 있는 힘껏 신나게 쌩쌩 굴러가는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지 않나요? 허가를 통해 내면의 힘을 채우는 것으로 시작해 보기를 바랍니다. 성장의 욕구를 찾아 인정하고 내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허가를 주면 채워질 것이라 믿습니다.


  힐링만을 바라며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기다리지 말고, 크게 호흡 한 번 하고 단번에 일어나 성장합시다. 성장은 요람에서부터 무덤 까지라는 것을 명심하고, 성장을 즐깁시다. 성장통이 오면 더 깊이 돌봐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면 마음껏 뽐내 봅시다. 누구에게나 피시스가 있다는 것을 알아봐 줍시다.


  "그로잉! 그로잉!"    :)





'글을 마치며'



가을방학


  2024년 07월 12일, 브런치 작가가 되고부터 4개월가량 신이 나서 쉬지 않고 글을 썼습니다. 한 여름에 뜨겁게 시작했던 일이 활활 타오르고 이제 사그라드나 봅니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마음속 불덩이들도 이제는 묵직한 온기로 편안하게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브런치북]

원장엄마의 사십춘기

강이의 마주이야기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_1

친절하지 말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힐링(Healing) 말고 그로잉(Growing)


'원장엄마의 사십춘기'와 '강이의 마주이야기'는 작가가 되기 전에 기록해 둔 것들을 두서없이 정리하여 만들었지만,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_1'과 '친절하지 말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힐링(Healing) 말고 그로잉(Growing)'은 브런치 작가가 됨과 동시에 넉 달간 쉴 새 없이 뽑아낸 저의 첫 작품들입니다. 세 편 모두 교류분석의 이론을 바탕으로 저의 개인적인 삶을 연결한 글들입니다. 교류분석! 하면 먼저 떠오르는 부모자아, 어른자아, 어린이자아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고, 감정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싶어 노트에 끄적여 놓았지만 남은 가을과 겨울은 제 자신을 조금 돌보고 충분히 쉰 다음 또 들뜬 마음으로 글을 쓰러 오겠습니다. 그동안 제 글에 라이킷 눌러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고 감사하게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새 봄에 새 글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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