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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니지, 어떻게 이런 걸 팔아... 당장 내가 가서 바꿔올게!
어머어머, 해도 너무 하네 이 작은 동네에서 이렇게
장사하면 안 되지, 한치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인데
이렇게 곯은 걸 팔다니 제정신이야?
나는 이런 거 그냥 안 지나쳐요 따져야죠
감정 돋우지 말고 상처받지 않으면서 조근조근, 할 말 다해야죠 그냥 지나치면 다른 사람한테도 피해 주니까 가르쳐야 한다고요!
딱 보니까 아는 사람이야, 오래된 물건 바가지 씌워
팔아먹는 거지, 모르고 그랬다고... 천만에.. 모르고는 이럴 수 없어.. 다, 장사수법이야... 자기가 손해 보기 싫은 거지 그래서 엄한 사람한테 떠넘기는 거야,
일단 가져가! 가져가서 가게 앞에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얘기를 해야 해
바꿔달라고 하든가 아니면 당신이 알아서 버리든 먹든 하라고 탁 던져 놓고 오는 거야!
그런 식으로 장사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줘야지 그래야 고칠 거 아냐?
그래서 조그만 데는 안 가는 거라고.. 큰 데는 안 그래.. 물건 신선하지 가격 싸지, 문제 있으면 바로 바꿔준다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다 큰 데 가는 거라고...
각양각색, 여럿이 하는 말이 어쩌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는지, 그리고 이토록 다양한 의견들이 이미 내 안 갈피갈피에 수납되어 있어서 이해하기를 가능케 하고 있다는 것 , 마음과 생각이란 저장고에 기능성, 그 유용함에 나는 흠칫 놀란다
또한 "안 그래?"가 설득인지 동의인지
" 그렇잖아?"가 강권인지 나무램인지
"그런 거야!"가 인정인지 개탄인지로 뒤섞여 헷갈림에도 실시간으로 진의를 파악하려 애쓰는 부단한 의식의 노력을 감사한다
하지만, 간극을 가진 오돌토돌한 감정선을 파악하고
사태의 본질을 명철하게 구분하려니 애쓰다 보니 더욱더 난해해지기도 한다
서로의 숙성된 의견이 확고한 방향성을 확보하려고 다투어 나서는데 심지어 빠른 속도로 전개되다 보니 내 더딘 이해로는 따라갈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벚꽃 무더기에서 내는 꿀벌들의 소음을 듣는 때처럼 어지러웠다
모처럼, 멀리 사는 지인들을 만나 고기 굽고 술 마신 후에 노란 단맛을 즐기려는 의도가 이렇게 뒤엉킬 줄이야? 난감해서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깔끔한 후식메뉴가 뜻 밖에 소동으로 이어지게 되어서 죄송한 마음마저 들었다
큰맘 먹고 비싼 값을 치른 아내의 선의와 사는 게 온통 물크덩한 나의 합작품, 이래도 속고 저래도 속는 어리바리한 허점투성이를 이참에 뽑아내려 선배들은 달려드는 것만 같았다
따가운 지적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레몬차를 후후 불며 향을 즐기는, 여유를 가장한 무대책의 내 모습이 그들의 가슴에 더 센 화마를 불러들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2
다음날, 닭장 문을 열고 참외 상자를 내려놓았다
꽃받침 모양의 스펀지에 들어있는 참외들은 예뻤다 비닐하우스에서 나고 자란 통통한 과육에서는 단내가 폴폴 풍겼다
한겨울 추위를 견딘 어린 모종의 시간과 열매로 굵어지는 과정을 보살펴온 농부의 손길이 떠올랐다
나처럼 생긴 손이었다
다치지 않게 그리고 보다 좋게 보이도록 포장의 옷을 입힌 순간들, 손과 팔목과 어깨의 움직임들과
눈빛이 나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노동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참외의 키와 무게를 상상하는데 문득 참외를 좋아하던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과도로 썩썩 문대듯 껍질을 벗기고는 씨앗 부분을 움푹 도려 낸 뒤에 내게 권했다
먹을 만 하지?
그 시절 벌레 먹거나 상한 것들을 발라내어 손질하는 능숙한 솜씨를 가진 어머니로 하여 삼 남매는 무탈하고 멀쩡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마술"이었다는 회상을 하며 나는 닭에게 모이를 주었다
간밤에 내게 먹혔거나 과일가게로 반품되었거나 쓰레기통에 버려질 일용할 양식을 가축에게 건네면서 조금은 미안했지만 닭값보다 훨씬 비싸게 치른 참외라는 것을 알면 "오늘의 잔치"를 반겨할 거라 믿기로 했다
나에 기특한 닭들이 기꺼이 나에 의도를 짐작하고 어린 나처럼 잘 소화시켜 줄 거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러는데 지난밤 잠자리에 들어 아내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TV 가 없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큰 불이 나서 피해가 엄청 크다더라... 경제불황에 모두에 삶이 어렵고... 우리도 생산자인데... 흠 없는 물건만 있었겠니... 참외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고.. 어렵게 말을 했는데도... 물론 속이 쓰리겠지... 기부했다고 생각하셔.. 얼마 되지는 않지만... 글구말여.. 진짜로 그 사람을 위한다면.. 진심을 전해야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야 한다고... 사업번창하시라.. 성공하길 바라서...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시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맘으로.. 이건 좀 그렇다고 전해야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면.. 아닌 거지..
미워하고 그러는 거라면... 그냥... 마셔... 그냥... 말아!....
다디단 참외향을 쪼는 닭들로 어수선한 닭장을 일별 하며 돌아 나왔다
저 멀리서 날갯짓을 하며 닭들이 모여들고 있었는데 주저 없이 던져주고 서둘렀다
그런데 닭장문을 닫고 다음 일을 향해 걸으면서 생각했다
여태껏 한마디도 섞지 않은 참외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나를 아껴주는 선배들이 물으면 뭐라 해야 하나?
그중에 한 명이라도 기억하면 어떡하지?
난감한 나는, 좀 전에 닭의 몸이 되어 이승을 떠난 혼령에게 묻기로 한다
니 생각은 어떠니?
말이 없다, 말하는 참외는 본 적이 없으니까, 참외의 말은 사실 다 사람의 말일진대
그 또한 참외의 속사정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내가 인격을 부여하면 참외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생각에 되묻는다
참회할까?
오늘은 여기서 끝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