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바짝 민 여자가
나무 아래에서 무언가를 하고
읍내에 볼일로 나는 스쳐 지나간다
돌아와 보니
식탁 위에 붉은 열매
아내와 큰 애는 사다리를 놓고서
그녀를 거들었다고 한다
암에 걸리지 않았던 시절로
다시 온 것은
나무와 서로 맞았기 때문인 거라
아내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별일 없이 사는 우리 또한
대신 아픈 누군가의 덕분일지 모른다며
놀라워한다
여느 때처럼
고속도로 위 엠블런스와 레커차는
늑골 아래 금 간 곳을
분주히 오간다
저토록 아파야 하는
송구함의 길목마다
머리카락 한 무더기 뽑혀 있다
그녀가 없는 나무 아래
오늘따라
열매들이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