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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게 2

사랑이라기에는 너무나 슬픈 이별 노래

by 나땅콩




훅 치고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양미리 익어가는 매캐한 연기 속 소주병에 숟가락 꽂고 불러재켰을, 그 지글대던 뽕짝 한 소절

뱀의 허리로 타 넘어 문턱을 넘어드는 서른 언저리,

청천하늘에 잔별도 많거니와 고초당초 맵다 하는 노랫가락, 제집 찾는 담장처럼 눈에 익을 때에도

혈관 밖을 흘러 다니던 노랫가락이 손을 얹듯 스며들었다


익숙한 거리가 낯선 장소로 변하는 세월 지나 어떤 날에 옛 노래가 떠나가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거리에서의 첫 구절처럼 김광석과 게리 무어와 휴트니 휴스턴이 그렇게 갔다

겨울나무와 낮에 나온 반달과 산장의 여인과 목포의 눈물과 영도다리에 홍도와도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잎들이 죄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로 남아도 보이지 벚나무처럼

작별은 내리막을 걷는 헛헛한 느린 걸음으로 휘적휘적 멀어진다

항구로 가는 대합실 문을 열듯

나도 모르게 소실점 너머로 사라져 가는

이별보다 설운 사랑노래

미련인지 정한(情恨) 인지로 서려 신파의 안개로 서리는 노래

들썩이는 청춘의 고갯마루에서

방황의 길목들이 남 얘기를 하듯 혀를 차며 혼잣말로 주절주절 늙어간다


하지만 그런 노래들이 가끔은 다시 안부를 묻는 순간 또한 있다

가물대던 귀향의 먼 길을 떨리는 감각으로 되찾아

성급히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아마도 노래는 손발을 잃은 이의 환상통처럼 오갈 데가 없을지라도 노인처럼 사라지진 않는 모양이다

만기를 채운 적금통장처럼 휑뎅그런 해 보여도

기억 속에 성화처럼 불붙어 타고 있는 것이다


몸은 수없이 나를 먹여 살린 그릇,

어데를 가도 따라붙던 현명한 안내자이며

나를 피워 올리는 정원의 흙이며 끝까지 의리를

저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최고의 벗이다

미지로 뻗어나가는 나의 통로이며 기꺼이 살만한

동기를 매일마다 부여하는 희망의 샘물이다


이렇듯 몸의 헌신이 잊히지 않는 한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떨림으로 한도를 초과했던 격정순간들은 여전히 나와 함께 머문다

젊은 목덜미로 나를 목마 태워 흔쾌히 데려가던 용기는 감각의 세계로 기꺼이 안내한다

노래의 깊은 영혼을 안겨주기 위해 몸은 여전히 나를 견인하는 열일을 마다하지 않고 대기 중인 것이다


샐비어 꽃을 닮은 소녀의 뺨처럼 화사하게

교복 입은 누이들의 목언저리처럼 새하야니 신비하게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고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보란 듯이 내게로 와 춤을 추자 손을 내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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