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나무가 길로 나와있다
어디로 가려는지 묻는 햇빛에
증발하는 물 알갱이와 비 온 뒤 마저 흐르고 있는 낙숫물이
바다로 가려는 길은 반대편이라 일러주려는데
노란 택시를 타고 고개를 넘어간다
자애로운 가슴에게
안개를 부릴 줄 아는 버드나무와
바람을 이고 사는 떡갈나무 숲에
먼저 들려보는 것이 좋을 거라는 얘기가 자꾸만
들린다
읍내를 지나는 유치원버스의 문이 열리자
손에 움켜쥐고 있던 열매를
꼬마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창문이 열린다
상추와 호박과 마른 명태가 놓인
길거리 노점에
가지를 뻗어
열매들은 손에서 손으로 옮겨간다
뒷마당을 집으로 사는 층층나무는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어서
안쓰러운 생각을 바라본다
어느새
잘 익은 씨앗 서너 개가 손바닥에 놓여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층층나무에게
말없는 눈짓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물으려 한다
문득, 가마솥뚜껑이 열리고
그 속에 고슬고슬 익어가는
풍요로운 색깔들이
머릿속에 가득 찬다
떠나고 떠나지 않는 옹이로
산 넘어 사람들은 집을 짓고
연기 나는 굴뚝을 세우고
숯의 열기를 데워 밥을 짓는다
별을 이고 태어나는 나무는
침대가 되어
오래된 향내를 맡으며 잠들게 한다
오므라든 씨앗이 펼쳐내는 꿈은
밤마다 황홀하다
병든 계절이 이글거리며 불탄다고
사람들은 야단법석,
하지만 내 손에
여무는 층층나무 씨앗은 굴러간다
노란 택시의 이마가 고개를 넘어온다
뒷마당에 울창한
층층나무가 하늘을 우러른다
바람 인다
가을이 오기 전에
어데로든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