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달리는 눈이 내리네
눈을 가만히 보니 사방으로 흩날리면서 어디론가 달려가는 눈을 따라가고 있네
공룡알이 놓여있는 벌판과 고압선이 지나는 철탑에도 눈이 다니네
참나무 둔덕과 얼키설키 모여있는 소나무
허물어져가는 무덤에도 눈이 서성이네
머뭇거리며 망설이다가 돌아 나오는 힐끔거리는
눈이 무슨 생각을 하네
살던 동네를 다시 온 것만 같고 가게방을 돌아다니는 손님만 같네
가고 싶은 데와 엇비슷한 데와 가지 말아야 하는 데를 고르려고 두방망이질을 하네
닿고 싶은데도 멈칫거리는 꼬마처럼 멀리 달아나네
눈이 눈을 보고 눈길을 따라가면서 투명한
눈길을 내고 있네
옆으로 던지는 공 같고 아궁이를 밀어 넣는 불쏘시개 같고 치마단을 들어 올리는 바람 같고 엄마 등에 업힌 갓난아이 같이 이동을 하네
눈썹을 들추네 처마를 들썩이네 늙은 개의 등허리를 올라타네 벽에 걸린 밀짚모자를 만지네
나의 네 바퀴는 앞으로 뻗어 있어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가고
눈은 뽀얀 가루들을 온 천지에 골고루 뿌려대는 허공의 손길로 새들을 날아다니게 하네
어디든지 드나드는 달빛만 같고 신호가 되어 나를 부르는 손짓을 하네 부표로 떠 있네
헐벗은 자동차로는 길을 벗어나지 못하리니
잠시라도 깰 수 없는 나의 꿈은 눈을 내주며 눈길을 따라가네
눈송이는 불어오는 입김을 타고 몸짓에서 떨어져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네
솔방울에 내리려다가 바위틈을 굴러 낙엽에스미네
파란 지붕 위를 날아서 장독대를 스치다가 댓돌에 앉네
모두가 다른 눈송이가 여럿으로 다다르다 새하얗게 뒤덮이며 같은 모습으로 내리네 매만지며 가려주네
머잖아 해가 들어 양지뜸에 눈은 녹을 테지만
책갈피 그늘에 돋는 버섯처럼 높은 곳에 앉아있는 수리부엉이처럼 어두워지는 밤 밝히겠네
환해지겠네
차츰 녹는 순서대로 봄을 데려오겠네 새싹으로 돋아나는 꽃마중 되겠네
어디로든 보낼 줄 아는 눈이 내리네
부끄러워 길 밖을 내다보니 저 위에는 어둡고 축축하게 버무려진 회색의 낯빛 겨울 하늘이 있네
나는 더 높은 그 위를 보네 눈길을 주네
명왕성과 프록시마 b와 우주의 끝트머리 천연색으로 깜빡이는 별들이 있네
빛보다 번개보다 빨리 일렁이고 비추다가 녹아서 소복한 눈으로 돌아오네 금세 보고 돌아오네
도로를 달리는데 눈이 오네 내 맘을 달리고 있는 눈을 눈으로 마주하네 눈길에 끼워달라는 눈들의 소리 없는 함성을 눈으로 듣네
나는 말없는 눈 눈길이네
오늘따라 눈이 많네 눈송이만큼이나 나도 많아지네
어제와 내일의 내가 다르게 흩날리네
소리 없어 고요하네 눈 내리는 새하얀 눈길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