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를 품은 그 큰 우주를
내가 품게 될 줄은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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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아름다운 제주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뀔수록 알게 됐다.
이건 ‘엄마’의 이야기라는 걸.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모두가,
그 이름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걸.
애순은 어릴 적 내 기억 속, 엄마와 꼭 닮아 있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섰고,
무엇을 바라기보다 버텨내는 쪽을 택한 사람.
소리 내 울지 못한 순간을 삼켜가며 살아낸 사람.
그래서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왜 저렇게까지 참고, 왜 저렇게까지 감추고,
왜 혼자 다 떠안고 사는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애순이 딸에서 아내로,
그리고 엄마가 되어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그녀가 품고 있었던 것이 결국
그녀를 품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 역시 어느새
누군가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걸.
어릴 적 나를 품은 그 큰 우주를
나도 내가 품게 될 줄은 몰랐지.
그건 고백이자 결심이고,
뒤늦은 이해였다.
내가 엄마를 이해하게 된 순간은,
나의 우주가 찾아오고 나서야 다가왔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기억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위한 이야기였다.
묵묵히 버텨온 시간,
말 없이 이어온 사랑,
언제나 뒤에서 나를 지켜보던 그 눈동자.
제목이자 마지막 인사가 된 말,
‘폭싹 속았수다’.
제주도 방언으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
하지만 그 안엔 훨씬 많은 감정이 들어 있다.
무겁고 조용하고, 그래서 더 따뜻한 한마디.
“정말 수고 많았수다.”
“힘들었지, 잘 견뎠수다.”
제주는 그렇게 말을 건넨다.
다 내색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끝까지 사랑한 사람들에게.
눈물 대신 살아낸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그 말을
애순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건넨다.
폭싹 속았수다.
사랑에, 가족에, 삶에,
그 모든 것에 완전히 젖어버린 당신에게.
애순은 결국 바다와도 닮아 있었다.
말없이 흘러가는 사람.
스스로는 항상 제자리에 있는 줄 알지만
누군가에겐 가장 넓은 품이 되는 존재.
속은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
애순은 말을 삼킨 사람이고,
바다는 말을 품은 존재였다.
결국 둘 다, 말 대신 시간을 들여 사랑을 표현한 존재였다.
그것이 가장 깊고 오래가는 방식이었다.
이제야 그 말이 마음속에 또렷하게 남는다.
폭싹 속았수다.
삶에, 사랑에,
그리고 그 모든 이름 없는 수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