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by 모든일은잘될꺼야

낳은 자식과 키운 자식이 있다.
낳아 준 부모와 키워 준 부모도 있다.
하지만, 정작 누구도 그 아이에게 묻지 않는다.
"너는 누구의 손을 더 따뜻하다고 느꼈니?"라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절제된 연출과 섬세한 감정선으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이야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로지 '료타'라는 남자의 변화와 깨달음을 위한 이야기다.

‘키운 정’이 ‘낳은 정’을 이기는가, 가족이란 피인가 관계인가?

이 오래된 질문에 다시금 귀를 기울이게 하지만, 그 질문의 중심에 있어야 할 ‘아이’는 정작 아무 목소리도 허락받지 못한다. 영화는 아이들의 고통을 서사의 배경으로 삼는다. 아이는 울고, 기다리고, 혼란스러워하며, 어른의 선택을 묵묵히 감당한다. 누구도 그들에게 묻지 않는다. '네가 어떤 시간을 살았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이 영화에서 아이는 철저히 상징적 존재로만 기능한다. 성장하는 건 오직 료타뿐이다.

감독은 권위주의적 아버지상을 반성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료타의 ‘사적인 감정’과 ‘내적 성장’을 중심으로 서사를 끌고 간다. 그러나 그 성장의 그림자에는, 두 아이가 감당해야 할 정체성의 붕괴, 소속감의 흔들림, 그리고 아무도 대변하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 놓여 있다.


이 영화는 묻는다.
“무엇이 진짜 가족인가?”
그러나 묻지 않는다.
“(아이에게) 무엇이 ‘진짜’ 가족인가?”


이 영화는 가족의 철학적 재구성이라기보다, ‘되물림된 권위’가 만들어낸 감정적 승계의 서사에 더 가깝다. 료타는 마치 권위의 옷을 벗는 듯 보이지만, 실상 그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방식은 벗어나지 못한다.

그 방식 속에 아이의 감정을 대신 선택하고, 침묵을 요구하며, 관계보다 역할을 중시하는 태도를 걸쳐 입고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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