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마닐라)
한 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근무한 지 5년을 갓 넘었다.
이젠 처음 가보는 취항지보다 N번째 가는 취항지들이 더 많아졌다.
2025년 12월에는 N번째 가는 취항지이면서 + 동시에 오랜만에 가는 취항지들로 비행을 다녀왔다.
마닐라, 라고스, 이스탄불이 그러한 곳들이었다
취항지 별로 비행 경험이 쌓이면, 각 취항지에 대해
승객 프로파일은 어떠한 편이고,
인기 많은 기내식 메뉴는 뭐고,
바쁜 비행인지/ 조용하고 여유로운 비행인지와 같은
인식 혹은 편견이 생긴다.
이번 달에 다녀온 N번째 가는 취항지들은 길게는 2년 만에, 짧게는 6개월 만에 가는 곳도 있었다.
오랜만에 가는 취항지들이지만
비행은 예전 나의 경험과 거의 같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탔다.
근데 막상 출근하여 승객들을 만나고, 비행기 안에서 일하면서
이전과 많이 다른 느낌을 받았다.
예전보다 비즈니스/퍼스트 클라스 근무 포지션에 대해 좀 더 익숙해지고 손이 빨라진 영향이 있을 것이다.
혹은, 요즘 '열심히 보다 즐겁게' 라는 마음가짐으로여유를 찾으려고 하는 마음가짐의 탓일까.
그러나 이것만으로 N번째 가는 취항지의 이전과 다른 비행의 느낌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이번달에 갔던 비행 중에는 어느 항공사에서든 승무원들에게 매우 바쁜 비행인 아침, 점심 출발 시간대 비행들도 있었다.
이 시간대는 승객들이 다 깨어있는 상태라 많이 먹고 많이 마신다. 즉, 승객들이 승무원에게 이것저것 달라고 요청하는 게 많은 시간대이다.
아무리 노련한 승무원들도 어느 취항지로 가건 승객수가 엄청 적은 게 아닌 이상
아침, 점심 시간대에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소위 말해,
'비행기 안에서 취항지까지 걸어간다' 는 느낌으로 일하게 된다.
근데 이번에는 이 바쁜 아침-점심 시간대 출발하는 비행들에서도
왠일인지, 식사 서비스를 마친 후 비행기 도어 앞 승무원용 의자인 점싯에 앉아 숨 돌릴 여유가 있었다.
이번 달에 간 취항지 중
예전에는 승객이 갑자기 갤리로 와 승무원에게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점잖고 친절한 승객들이 대부분인 취항지도 있었고,
예전에는 승객들이 온갖 종류의 칵테일과 목테일을 시켜 하늘 위의 바텐더가 된 기분이었지만
이번에는 내 담당 zone에서 목테일 한 잔만 주문받기도 했다.
승무원으로서 출근할 때 입는 유니폼, 가방은 첫 입사때부터 지금까지 똑같다.
그러나 이 일을 5년째 해오면서 점점 깨닫는 게 있다.
N번째 가는 취항지는 있더라도 N번째 같은 비행은 없다는.
똑같은 취항지라도 비행기 안에서의 근무 시간, 만나는 사람들, 취항지에서의 체류 시간은 전부 다르다.
승무원의 비행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N번째 다가오는 새해이지만
새해는 늘 기대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해는 N번째이지만
매 해마다 경험하는 사람, 사건, 상황은 늘 다르기 때문에.
Adios,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