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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Feb 11. 2024

설 명절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만두도 만들지 않았다


설 날이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은 만두라면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먹는다. 그래서  설이 되면 김장김치를 다져 김치만두를  만들어 떡국을 끓였다. 하지만 이번 설에는 명절 음식은 물론 식구들이 좋아하는 만두조차 만들지 않았다. 내 생애 이런 설날은 처음이다.

  어려서부터 만두를 좋아했던 나는 오매불망 설날을 기다렸다.
엄마는 양손에 칼을 쥐고 많은 양의 김치를 다졌다. 자루에 담아 맷돌로 눌러서 물기를 뺐다. 숙주나물을 삶고 두부를 으깨어 갖은양념을 넣고 만두소를 만들었다. 할머니는 밀가루 반죽을 비닐봉지에 넣고 발로 밟아 만두피를 만들었다. 커다란 상다리를 댕강 접어 방바닥에 눕혔다. 나는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떼어서 밀가루를 입힌다. 무릎을 꿇고 앉아 홍두깨 양쪽 끝을 잡고 반죽을 밀면 죽죽 늘어났다. 늘어난 반죽을 들어 빛의 투명도를 보며 피의 두께를 살폈다. 동생은 주전자 뚜껑을 꾹꾹 눌러 피를 떼어 냈다. 할머니는 그것을 받아 소를 가득 담아 만두를 만들었다. 만두 밑에 밀가루를 듬뿍 묻혀 커다란 상을 펴 놓고 그 위에 일렬로 줄을 세웠다. 만두 만드는 일은 다음날까지 이어지곤 했다.

 남편의 형제는 6형제였다. 시댁 식구들도 만두를 무지 좋아했다. 시어머니는 어마어마한 양의 만두를 만드셨다. 어려서부터 만두를 만들었던 나는 그 많은  만두를 뚝딱 만들어 내곤 했다.

 함께 만두를 만들던 할머니도 엄마도 시어머니도 모두 돌아가셨다. 그렇지만 만두 만드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남편과 아이들이 채웠다.

아이들은 자라서 우리에게서 독립했다. 명절 때마다 아이들 상황에 따라 우리가 움직이였다. 제사는 돌아다니며 지내는 게 아니라는 핑계로 차례도 지내지 않는다.

이번 설 명절엔 아이들의 일정으로 인해 식구들이 모이지 않아 남편과 나뿐이었다. 만두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없다는 이유에 이런저런 핑계를 붙여 만두를 만들지 않았다.

 어렸을 땐 엄마가 사 주는 설빔을 입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어른들에게 새배를 했다. 세뱃돈을 받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결혼하고부터는 며느리. 아내. 엄마. 주부등등의 굴레가 나를 옥죄었다. 그런 것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제 양친부모 안 계시니 우리가 어른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 아들이 결혼하지 않았으니 눈치 볼 며느리도 없다. 걸릴 것이 없으니 세습된 관습이나 전통문화를 차치하고 내 맘대로 하고 싶었다. 어차피 세월이 변하면 전통이나 관습도 그에 따라 변하는 게 당연한게 아닐까?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이 좋아하는 만두조차 만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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