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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Apr 10. 2024

물이라도 한 잔 주이소

 날씨가 잔뜩 흐렸다. 숲에 가서 숲 냄새도 맡고 산 벚꽃도 즐겨야지 했던 마음은 흐린 날씨로 인해 포기했다. 대신  작업실에 들어가  선캡모자를 만들었다.
 점심을 먹고 커피잔을 들고 마당을 서성이고 있다.  호수에서 바람이 올라와  벚나무를 흔들어 꽃잎을 날리고 있다.

 마당 끝에 울타리 삼아 심어 놓은 화살나무에 홑잎이 어느새 피었다. 더 늦으면 나물 맛을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홑잎을 따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확인해 보니 아랫마을에 사는 지인이었다.

"어! 순자씨!"
"커피 한 잔 주이소! 커피 없으믄 물이라도 한 잔 주이소!"
"커피던 물이던 와. 줄게!"

잠시 후, 그녀의 차가 올라왔다. 그녀의 얼굴이 부어 보였다.
 나는 토마토와 약초차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데크 의자에 앉아 그동안의 일상을 물었다.
나의 입은 대답하고 손은 홑잎 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한참을 집 아래 호수를 멍하니 내려다보던 그녀가 일어섰다.

 "왜? 벌써 가려고? 더 있다 가!"
 "오늘 그 사람 첫 기일 아닌교?"
 "그래. 이때쯤이었지? 그날도 이렇게 벚꽃이 흩날렸어!"
 "누가 뭘 봐줬는데, 그 사람이 배가 고프답니다. 그래서 좋아했던 라면도 끓이고 통닭이랑 피자 올려 줄려구요."
"그래서 또 울었누? 얼굴이 퉁퉁 부었구만!"
"아니라예. 이제 안 울어요."

 젖은 그녀의 목소리가 축축 늘어진다. 그녀의 남편은 지난해 이맘때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잘 가!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올 때 벚꽃이 눈처럼 쏟아지던 기억이 있다.

그녀가 떠나고 나는 뒷산으로 갔다. 두릅을 따고 텃밭에서 시금치도 뜯었다. 닭장에 가서 계란도 꺼냈다. 차에 싣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현관 앞에 놓아두고 사진을 찍어 카톡을 보냈다.

"별거 아니지만 맛있게 무쳐서 상에 올려주라. 그리고 내 안부도 전해 주고, "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양쪽으로 서 있는 벚나무가 꽃터널을 만들었다. 그 길을 지나는데  꽃잎이 날아와 차창에  부딪는다.  길 옆에는 꽃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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