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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Apr 13. 2024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트라우마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좋았던 기억이나 나빴던 경험의 트라우마는 얼마나 될까?

가끔 뜬금없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거부 반응이 툭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부부는 매일 아침 빼놓지 않고 먹는 게 있다.

뜨거운 물과 찬물은 50대 50으로 섞어서 마신다.

화분과 꿀에 재운 꾸지뽕열매를 먹고 유산균과 종합비타민을 먹는다.

 나는 순서대로 먹은 후, 남편이 챙겨 주는 종합비타민을 받아 들었다. 알약의 크기가 제법 커 보였다. 지금까지 먹던 종류가 아닌 어제 택배로 도착한 다른 종류의 비타민이었다. 받아 든 비타민을 입에 넣고 물을 마시며 삼키는데 목구멍에 그대로 걸렸다.

나는 컥컥 거리며 알약이 너무 크다고 구시렁거렸다. 남편은 그건 씹어 먹는 거야! 라며 핀잔을 준다. 나는 가루약 싫어! 씹어 먹는 건 더 싫구! 라며 징징거렸다. 나는 약을 보면 목구멍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 잘 먹지 못한다. 알약은 물을 이용해 어찌어찌 넘기지만 가루약은 아예 먹지 못한다.


 남편은 출근하고 혼자 남은 나는 가만히 어린 시절을 생각해 봤다.

 유년시절의 기억은 자주 아팠다. 자주 체하고 겨울만 되면 두드러기를 달고 살았다. 엄마는 두드러기가 나서 긁기 시작하면 가라앉으면 들어오라며 내복만 입혀서 밖으로 내 쫒았다.

음식을 먹고 토하거나 배앓이를 하면 할머니는 내 손을 잡아끌고 동네의 침쟁이 영감에게 데리고 갔다. 영감은 굵고 뾰족한 침을 불에 달구어 내 엄지 손가락과 발가락을 찔러서 피를 뺐다. 어린 나이에 그것은 공포였다.

그리고 가루약을 습자지 같은 종이에 싸서 할머니에게 건넸다. 할머니는 물과 가루약을 주면서 삼키라고 했다. 난 쓰기만 한 그 가루약을 도저히 삼킬 수 없어서 토해내곤 했다.

그러면 할머니의 손바닥이 여지없이 내 등짝으로 날아왔다.


50년도 더 지난 기억이다. 지금은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도 약을 잘 먹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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