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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할머니

by 작은거인


결혼을 앞둔 큰 아이의 사진첩을 정리하다 나온 할머니의 사진이다. 가운데 앉아계신 분이 울 할머니다. 할머니는 내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다.
비녀를 꽂아 쪽진 머리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고 허리는 굽어 제대로 펴지 못하고 앉아있다.
저 몸으로 내가 큰 아이를 낳았을 때 3주간 산바라지를 해주고 가셨다.
구부러진 허리로 하루 다섯 끼의 미역국을 끓여 주고 아이 목욕을 시키고 집안을 반질반질 빛나게 청소를 해 놓으셨다.
세탁기를 사용하라고 해도 매번 아이의 천기저귀를 하얗게 삶아 손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널었다. 아이의 기저귀에서는 바스락바스락 햇살 냄새가 났다.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네 산바라지를 해 주고 싶은데 힘이 없어 못해주겠다며 미안하다고 눈물을 글썽이셨다.
둘째를 낳고 2년쯤 지나 한 겨울 시린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당신이 가끔 정신줄을 놓는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셨다.
일곱 살에 민며느리로 들어와 83세에 떠나셨다.
한밤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린 두 아이를 시부모님께 부탁하고 수원에서 고향마을까지 택시로 달렸다. 칠흑뿐인 시골길을 달리는데 택시가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지금 밖에는 지리산 골바람이 눈발을 날리며 강하게 분다. 할머니가 떠나던 그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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