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감정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법

리더의 자리를 지키며 나를 지키는 기술

by 심지헌

한때는 그렇게 믿었다.
버티는 사람이 결국 남는다고.
리더라는 자리는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감정은 감춰야 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그래서 아팠던 날에도,
마음이 무너졌던 날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연습했다.

회의실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속으로는 다 무너지고 있으면서도
‘괜찮습니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그게 ‘책임지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팀의 안정을 위해, 조직의 방향성을 위해,

누군가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문득,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었다.
예전의 나보다 훨씬 더 무표정했고,
말은 여전히 단단했지만
그 안에 담긴 온기가 사라져 있었다.
‘버틴다’는 건 어느새
‘나를 지우는 일’이 되어버렸다.


리더는 감정이 없는 존재가 아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내 안에서 점점 굳어져서
어느 날엔 나를 괴롭히고,
어느 날엔 주변 사람에게 튀어나온다.


그래서 이제는 인정하려 한다.
리더도 흔들릴 수 있다고.
리더도 울 수 있다고.
리더도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수 있다고.

그건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증거다.

내가 나를 지키는 순간,
조직도 나를 더 오래 믿을 수 있게 된다.

내가 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
강함이란,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할 줄 아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할 땐 말하고,
쉬어야 할 땐 멈추고,
감정이 올라올 땐 인정하는 것.

그게 진짜 책임이다.

사람을 이끄는 리더라면,
무너지는 법도 알아야 하고,
다시 일어서는 법도 연습해야 한다.


리더십은 결과로 증명되기도 하지만,
관계로 증명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나를 잃지 않고 팀을 지킨다면
그 조직은 오래 간다.
나도 오래 버틸 수 있다.


이제 나는 ‘버틴다’는 말 대신
‘내가 나를 이해한다’는 말을 쓴다.
감정과 책임, 그 사이의 어딘가에서
나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조금씩 연습한다.


리더도 사람이다.
그 단순한 진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게 나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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