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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n 25. 2021

몰래카메라

아마 영상기자들에게 몰래카메라 취재에 대해 물으면 백 명이면 백 명 다 부담스럽다고 말할 것이다. 연기자가 아닌 우리가 몰래카메라로 촬영할 때만큼은 촬영하지 않는 척 연기를 해야 할 뿐더러 사실 몰래카메라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래카메라를 피할 수 없을 때가 분명 있다.


예를 들어, 과잉진료 의혹이 있는 병원 내부의 진찰 및 처방 장면이나 비리 의혹이 있는 정치권 인사와의 대화 장면을 보도하기 위해서는 몰래카메라를 피할 수 없다. 그 누가 카메라 앞에서 과잉진료와 비리에 대해 솔직하겠나. 해당 사안이 공적 관심사로서 국민의 알 권리에 부합한다면 몰래카메라 촬영은 어느 정도 허용된다. 몰래카메라는 형사 및 민사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게 되지만 목적의 정당성, 법익 간 균형성, 수단의 상당성, 긴급성, 보충성 등을 이유로 위법성이 조각될 여지는 있다. 다만, 당사자가 공인이 아니라면 모자이크, 음성변조 등으로 인격권 침해를 예방해야 한다.


광주 건물 붕괴 참사와 관련해 나는 최근 광주 학동 4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 사업 조합 사무실에서 조합장의 아들인 총무이사와의 대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했다. 정확히 말하면 밑대기로 촬영했는데 밑대기란 몰래카메라의 일종으로 카메라 렉 버튼을 눌러놓고 카메라를 내린 채 촬영하지 않는 척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로 현재 조합장과 총무이사는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입건됐고 조합이 지장물 철거 공사를 27억여 원, 석면 해체 공사를 22억 원에 여러 업체와 계약했는데 경찰은 이 과정에서 공사 금액 부풀리기 등이 있었는지 수사 중이다. 총무이사와의 대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취재기자가 하도급에 대해 질문하고 총무이사가 그에 답할 때 언제 그의 입에서 국민이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가 나올지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경우, 해당 사안이 공적 관심사로서 국민의 알 권리에 부합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명함 몰래카메라와 같은 몰래카메라도 존재한다. 명함 몰래카메라란 명함 케이스에 카메라가 달린 걸 말한다. 펜이나 수첩에도 달려있는 것도 있다. 화질이 좋지 않아 요즘엔 핸드폰이나 오스모포켓을 더 많이 사용하긴 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몰래카메라 취재는 부담스럽다. 촬영하지 않는 척 연기를 해야 할 때는 마치 죄인인 양 괜히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걸리기도, 걸리면 무조건 튀어야 하는데 미처 튀지 못해 삭제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신고를 당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몰래카메라는 남들이 내가 촬영하는지 모르는 만큼 나조차도 잘 촬영되고 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목적의 정당성, 법익 간 균형성, 수단의 상당성, 긴급성, 보충성을 다 고려한 후 몰래카메라 취재를 하면 좋겠지만 사실 아직까지는 몰래카메라로 촬영할 이유가 없는데도 굳이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다. ‘섭외가 안돼서’와 같은 이유로 몰래카메라 취재를 하는 경우는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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