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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l 18. 2021

이사하기로 결심한 이유 3

늘어나는 짐과 불어터지는 집

택배가 오면 기분이 좋다.


물론 택배가 오면 기분이 좋아야 맞다. 택배는 모든 직장인들의 행복이지 않을까 싶다. 나한테도 택배는 행복이었다. 언박싱의 설렘... 다들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한테는 택배가 골칫덩어리였다. 필요 없는 걸 사는 게 행복 중에 또 하나인데 필요 없는 걸 사는 건 꿈도 꾸지 못했고 정말 필요한 것만 사도 뭘 산다는 거 자체는 테트리스를 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실평수 6평 남짓 안되는 원룸에서의 테트리스. 일단 쌓기, 섞기, 비워두기 스킬들을 써먹어야 했다.


높은 서랍장은 필수. 서랍장 한 칸을 두 줄로 채울 수 있도록 작은 박스들도 필수다. 물건들을 차곡차곡 잘 쌓는다. 때로는 과감하게 물건들을 섞어 쌓는다. 수건 옆에 해초 샐러드 봉지를 함께 놓았다. 장점은 샤워하고 나와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바로 해초 샐러드 봉지를 열어 아침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 읽은 책이나 당장 안 맬 것 같은 가방은 당근마켓에 내놓고 여름에는 겨울 옷, 겨울 이불을, 겨울에는 여름 옷, 여름 이불을 고모네 가져다 둔다. 그런데 다 읽은 책도 두면 한두 번 더 읽을 수도 있고 당장 안 맬 것 같은 가방도 두면 나중에 맬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쉽다.


쌓기, 섞기, 비워두기  스킬들을 열심히도 써먹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게임에서 졌다. 물건들은 마치 테트리스 게임 오버 장면의 갈 길을 잃은 블록들처럼 집 밖 복도로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이웃분들께 민폐를 끼치는 중이다. 죄송하다.


그래서 나는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언박싱의 설렘을 다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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