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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pr 09. 2021

코로나19 시대의 영상기자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놨다. 나만 해도 중국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을 못 본 지 꽤 오래됐다. 작년 초에 코로나19가 터졌을 때만 해도 연말 즈음에는 잠잠해질 줄 알았고 그래서 연차를 최대한 쓰지 않고 아껴놨다. 혹시나 가족들을 보러 중국에 갔다 올 수 있을까 하고. 그런데 지금까지도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다들 너무 보고싶다. 이런 것뿐만 아니라 매일 마스크를 쓰는 것도 비대면으로 만나는 것도 우리에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물론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영상기자들도 집단 감염이 발생한 교회나, 병원이나, 아파트나, 시장이나, 유흥업소나, 식당이나, 카페나, 학원이나, 헬스장 같은 현장을 직접 다녀야 하다 보니 감염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편이다. 그런 곳을 가지 않는다고 해도 여러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른다. 그래서 취재하는 동시에 나도 지켜야 한다. 마스크는 항상 착용하고, 손 소독도 장비 소독도 자주 한다. 방역복을 입을 때도 있다. 하지만 사실상 운이 안 좋으면 ‘슈퍼 전파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내가 조금만 몸이 좋지 않아도 신경이 쓰인다. 


많은 수의 기자들이 함께 모이게 되는 현장에서는 더 걱정이 된다. 웬만한 브리핑이나 기자회견은 취재진이 최소화되지만 사전에 그런 정리가 되지 못하는 현장이 많기 때문이다. 그중엔 확진자를 접촉했을지도 모르는 기자도 섞여있을 수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 위험 지역 취재를 하게 되면 회사 비용으로 검진 및 자가격리를 하게 되어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자원해 2주 동안 코로나19 취재 및 현장 연결을 하러 대구에 내려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대구는 죽은 도시와 다름없었는데 선배들은 그래서 그때 내가 자원한 게 아직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고 하신다. 서울에 올라와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를 했다. 코로나19 검사는 코를 찌르니까 아팠다. 자가격리는 초반엔 좋았고 나중엔 심심하고 불편했다. 1000 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며 시간을 때웠다.



초반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확진자 발표에 따라 시민의  권리를 위해 동선을 일일이 취재했었는데 그때만 해도 확진자의 수가 적어 그들이 어디를 방문했는지를 알리는  중요하다고 느꼈지만 확진자의 수가  배로 불고 나서는 집단 감염이나 특이한 감염 경로에 대한 취재가 아니고서는 동선을 일일이 취재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도, 시민들이  시기에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다는  보도를 통해 알게 되면 자발적 검사를 받을  있다는 , 그리고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필요성을 인정하나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낙인찍힐  있다는 점에서 점점  부담을 느끼게  것이다.   동안,  그래도 힘든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래도 장사가 안돼 힘든 자영업자들, 그들의 가게에서,  가게가 위치한 골목에서 확진자가 나오기라도 하면 가게 운영은 거의 불가능하고 월세며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이며 책임지기  힘들어진다. 그걸 알기에 어디까지 노출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한다. 이미지컷을 이용해 최대한 사람들의 생계를 해치지 않도록 노력한다.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에겐 풀어갈 숙제가 몇 개 더 생긴 셈이다. 부디 모두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때가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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