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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Dec 02. 2021

섹파에서 연인으로


우리는 술자리에서 만났다. 미친 듯이 끌렸다. 보고 싶어서 또 봤고 역시나 미친 듯이 끌렸고 우리는 자고 또 잤다. 사실 나는 그가 좋았다. 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아니라고 선을 그어야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도 가볍게 보고 싶다며 거짓말을 했다.


섹파. 섹스만 하는 관계. 내가 좋아하지 않았으면 아무 문제 없었겠지만 내가 좋아했기 때문에 당장 그만둬도, 붙들고 가다 그만둬도 나만 상처받을 관계였다. 감당할 자신이 없어 몇 번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지만 그가 점점 더 좋아졌다.


친구들은 그가 날 이용하다 시시해지면 버릴 거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기꺼이 이용당하겠다고 했다. 미쳤지.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았을까.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처음에는 숨겼지만 숨겨질 리 없었다. 나는 뭘 잘 숨기는 성격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 표현하는 게  후회가 없을 거 같았다. 돌아오는 건 거절에 거절이었지만 후회 없이 다 표현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그의 입장에서 우리가 사랑에 빠져야 할 이유가 없긴 했다.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그래서 섹파는 아무리 한 쪽이 마음이 있어도 섹파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나.


그런데 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었다.


사랑, 분명 또 나를 아프게 할 거란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알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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