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쓰레기봉투 두 묶음만 주세요.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없는데 급하게 필요해서 들린 집 앞 슈퍼였다. 그때는 봉툿값은 다 똑같고 원래 비싼 줄 모르고 그냥 그 슈퍼가 언덕 위에 있어서 비싸게 받는 줄 알았다. 과자도 음료수도 다 비싸게 받는 줄 알았다.
되도록이면 안 가야지.
근데 언덕 위에 살다 보면 저 밑에 씨유나 세븐일레븐 혹은 더 나가서 롯데슈퍼까지 가기 귀찮을 때가 많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안 가려 했던 그 슈퍼를 자주 가게 되었다. 그 슈퍼는 할머님과 사장님인 아드님이 운영하고 계시다. 또 웬만한 건 다 있다.
그러다 입원 대기를 하며 회사를 안 나가고 있던 어는 날, 맥주 딱 한 캔이 당겨서 샀는데 사고 나니 그냥 밖에서 먹고 싶더라. 그래서 사장님께 밖에 걸터앉아서 마셔도 되냐고 여쭤봤다. 그랬더니 의자를 내어주시며 편하게 마시고 가라고 하시더라.
인생 이야기도 하고 하소연도 했다가 위로와 조언도 받았다가 또 들어드리기도 하고 그게 몇 번 반복되던 어는 날, 또 맥주 딱 한 캔이 당겨서 들렀는데 웬걸 카드가 없네? 사장님이 안 계시고 할머님 혼자 계시길래 혹시 계좌이체를 해도 되는지 여쭤봤는데 계좌이체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냥 마셔. 이 할미가 사주는 거라 생각해.
넉살이 좋은 편이라 ‘진짜요? 진짜 마셔요?’ 하며 그 자리에서 캔을 따고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다음에 와서 꼭 계산하겠다고 했다. 그러지 말라고 하시는 걸 결국 다음에 가서 계산했지만 뭔가 외상을 달 수 있는 정도의 특별한 인연이 된 기분이 들었다.
마시고 있으면 오가는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슈퍼가 무슨 상담소도 아닌데 그렇게들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신다. 예를 들면, 딸이 결혼을 안 한다고 해서 속이 썩어간다는 아줌마의 이야기나 아내가 아파서 굿거리까지 했다는 아저씨의 이야기. 그렇고 그런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 그래서 나는 그 사람 냄새 나는 나만의 아지트가 좋아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