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8시부터 5시까지 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저녁을 먹고 몸이 별로 좋지 않아 일찍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비상계엄령 선포 뉴스를 보았다. 일단 비상계엄령이 무엇인지에 대해 찾아봤고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 무엇이 바뀌는지에 대해 찾아봤다. 찾아보고 나니 너무 말이 안 돼서 가짜 뉴스인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 회사 뉴스였고 그래도 말이 안 돼서 회사에 무슨 일이 있나 했다. 그러는 사이에 보도는 계속 이어졌고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카톡방이 막 울려대기 시작했다. 근무 지원자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나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기자는 현장에 있는 게 맞으니까.
국회 앞은 내가 자주 보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국회 출입문과 담벼락은 봉쇄됐고 수많은 경찰 병력이 투입되어 출입을 막으며 시민들과 충돌하고 있었다. 군 헬기는 국회 둔치에서 이착륙하며 상공에서 날아다녔다.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늦게 도착해 국회 안으로 진입하지는 못했지만 동료들에게 들어보니 국회 안에는 무장한 군 병력이 투입되어 있었고 일반 병사뿐 아니라 특수부대원들까지 본청을 진입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총을 겨누고 곳곳을 파손하는 등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회 인근에도 군 병력은 풀숲 따위에 위장한 채로 숨어있었다. 당황스러웠다. 군, 경이 뭘 하려는 건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내 눈을, 귀를 계속 의심했다.
여섯 시간의 지옥이었다. 누군가는 별거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는 어떻게 별거 아닐 수 있냐고 말한다. 진보, 보수를 떠나서 대통령이 그러면 안 됐다. 물리적 충돌 분명히 있었다. 그들은 무장한 상태였다. 사람이 안 죽었다고? 그럼 사람이 죽었어야 하나? 그리고 국회를 손에 쥐면 서울을 치고 나라를 쥐어보고 싶지 않으리라는 법 있을까? 무고한 시민들이 피를 흘리든 말든 말이다. 독재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국민과 헌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윤 대통령은 두 가지를 다 짓밟았다. 자격 박탈이다.
첫 번째 윤 대통령 탄핵안은 부결이 났지만 결국 두 번째는 가결이 났다. 부결이 나면 다시 불안한 삶 속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기도, 나라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불편한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많은 사람들은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케이팝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며 또 그들의 응원봉을 흔들며 MZ 세대의 조금은 특별한 시위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결과는 예측불가했고 변수도 너무 많았다. 결과는 204 대 85. 12개의 이탈표. 국회 앞에서는 우렁찬 함성이 하나의 소리가 되어 터져 나왔다. 눈물도 있었다. 안도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들도 있었다.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세대 불문하고 무언가를 함께 원했고 그걸 위해 길거리로 나왔고, 싸웠고, 쟁취한, 역사에 길이 남을 승리의 순간이었다.
동기랑 근무가 끝난 후 술을 한잔했다. 반성을 했다. 매일매일 그림을 찍어내듯이 카메라를 잡다 보니 조금은 나태해져 있던 우리가 시민들과 함께 기쁨과 환희를 느끼며 ‘아, 우리가 역사를 쓰지는 못해도 역사를 쓰는 사람들을 기록하는 사람들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느꼈다.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취재하려 심혈을 기울였던 우리의 모습이 이 2주에서 그치면 안 된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