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소재로 등장하는 영화들이 가끔 있습니다. 커피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영화 전반에 커피와 관련된 풍경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작품들도 있습니다. 1985년에 개봉한〈아웃 오브 아프리카〉속 커피는 케냐의 커피 농장을 무대로 펼쳐집니다. 주인공이 일군 커피 농장을 중심으로 아프리카로 이주한 이민자들의 삶이 이어지고, 그 장면들 사이로 케냐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비교적 자세히 등장합니다.
커피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영화 속 커피 장면을 따라가는 일은 지금까지도 오래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를 통해 케냐 커피 농장의 과거 풍경을 한 번쯤 들여다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26년 새해를 맞아 처음으로 선보이는 테라로사의 1월의 킹콩은 [케냐 키아마바라 AA]입니다. 석류의 새콤한 산미와 히비스커스의 풍미가 어우러진 커피입니다. 그래서 이번 1월의 브런치는, 한 해의 시작을 함께하는 첫 번째 커피로 케냐 커피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케냐 커피는 오래전부터 품질의 고하를 떠나 고급 커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케냐 커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발랄한 산미와 신선한 과일을 떠올리게 하는 다채로운 향미는 케냐 커피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초기의 케냐 커피 생산은 영국인이 소유한 대규모 농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63년 케냐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커피 산업의 대부분은 케냐인들의 손으로 넘어왔고, 지금의 구조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적도에 위치한 케냐는 지리적 특성상 커피 재배지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중부의 마운트 케냐 경사면을 중심으로, 북동쪽의 중부 고원, 서쪽의 아베르데어 산맥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커피가 재배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고품질 스페셜티 커피는 마운트 케냐 인근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니에리(Nyeri), 무랑가(Muranga), 키리앙가(Kirinyaga), 키암부(Kiambu)등이 이 지역에 속하며 동부의 메루(Meru) 엠부(Embu)등도 최근 고품질 커피 생산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곳입니다.
케냐 커피 생산량의 약 55%는 수백 개의 협동조합을 통해 생산됩니다. 이 협동조합에 속한 농부는 약 60만 명 이상으로, 대부분의 커피가 소규모 농가에서 재배된 뒤 협동조합을 통해 판매되거나 수출됩니다. 나머지 생산량은 중·대형 농장에서 나오며, 이들 농장은 워싱스테이션과 드라이 밀까지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케냐 커피를 대표하는 품종인 SL28과 SL34는 1950년대 스콧 연구소(Scott Laboratories)에서 개발된 품종입니다. 부르봉 계열의 유전적 특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질병과 병충해에 약했던 기존 품종의 단점을 보완했습니다. 이 품종들은 케냐의 기후와 토양에 잘 적응하며, 풍부한 바디감과 와인이나 블랙커런트를 연상시키는 향미를 만들어냅니다.
최근에는 병충해 저항성이 뛰어난 바티안과 루이루 11 같은 품종도 점차 보급되고 있지만, 여전히 케냐 커피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SL28과 SL34는 빠질 수 없는 이름입니다.
케냐 커피 품질의 우수성은 지형과 기후, 품종의 영향도 크지만, 가공 방식 역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케냐는 대부분의 커피를 워시드 방식으로 가공하는데, 이 과정이 다른 산지와는 다소 다릅니다.
수확된 커피는 워싱스테이션으로 옮겨져 미숙과와 결점두를 제거한 뒤 껍질을 벗기고 1차 발효를 거칩니다. 고도가 높아 발효 시간이 긴 편인데, 니에리 지역의 한 워싱스테이션에서는 1차 발효에 약 74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1차 발효 후, 케냐에서는 커피를 다시 깨끗한 물에 담가 2차 발효를 진행합니다. 이 이중 발효 과정은 남아 있는 점액질을 완전히 제거하고, 파치먼트를 안정화시켜 커피의 향미를 더욱 선명하게 만듭니다. 이후 커피는 그늘 아래 건조대에서 햇볕과 바람의 강도를 조절하며 천천히 말려집니다. 이 느리고 까다로운 과정은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만, 케냐 커피의 명성은 바로 이 시간을 들이는 방식에서 만들어져 왔습니다.
케냐 커피의 밝은 산미는 우연히 만들어진 결과가 아닙니다. 토양과 기후, 품종과 사람, 그리고 시간을 들이는 방식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맛입니다. 한 잔의 케냐 커피에는, 그렇게 축적된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다음에는 케냐 커피의 풍미와 현재상황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테라로사가 1월에 소개하는 [케냐 키아마바라 AA]는 스크린 사이즈 17~18(약 7.2mm 이상)의 AA 등급입니다. 커다란 크기만큼이나 커피 한 잔, 커피 한 모금마다 석류의 새콤한 산미와 히비스커스의 진한 여운 그리고 단맛이 균형 있게 느껴집니다.
[케냐 키아마바라 AA]는 단순히 한 지역의 커피를 넘어, 수백 명의 농부와 협동조합이 오랜 시간 쌓아 온 신뢰와 정직의 결실입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강렬하면서도 깨끗한 여운 속에서, 케냐 커피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