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길이 모여 만들어낸 케냐 커피 (2)

by TERAROSA 이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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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커피는 오랫동안 밝은 산미와 과일을 연상시키는 또렷한 풍미로 기억됩니다.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서는 ‘아라비카 커피의 보석’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케냐 커피는 분명한 개성을 가졌습니다. 케냐 커피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주변의 조건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케냐 커피는 어떤 환경에서 소비자에게 오는지, 그 다채로운 풍미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케냐 커피의 투명한 경매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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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투오리진_케냐.psd_0000_IMG_5150.png Ⓒ Yunseon Lee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케냐의 식민지 시대가 끝나기 전인 1934년부터 케냐의 커피 산업은 정부 주도의 공개 경매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로 유통되어 왔습니다. 1933년 케냐 커피 법 제정을 통해 커피 판매 통제권이 런던에서 케냐로 넘어오면서, 품질에 따른 가격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이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나이로비 커피 거래소에서 열리는 이 경매는, 케냐 커피를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유통 구조를 가진 커피 중 하나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유명 농장과 협동조합의 커피, 그리고 최고 등급으로 불리는 AA 등급 커피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때로는 가격에 제한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높은 가격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AA, AB 등의 등급은 품질이 아니라 단순히 생두의 크기를 기준으로 한 분류이지 이 자체가 품질과 직결되지는 않습니다.2006년 말,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성장과 함께 생산 이력 추적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생산자와 구매자 간의 직접 협상이 가능해졌고, 정부는 독립 마케팅 대리점에 면허를 발급해 경매를 거치지 않는 수출도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소규모 농부들은 규모 확보와 해외 바이어와의 연결 문제로 인해 경매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으며, 현재도 케냐 커피의 약 85~95%는 이 방식을 통해 거래되고 있습니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케냐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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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가 급속하게 성장하던 약 10여 년 전, 케냐 커피의 가격은 매우 높았습니다. 누군가 좋은 케냐 커피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이미 파운드당 8달러를 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최고 품질의 에티오피아 예가체페 커피 가격이 약 4달러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가격이었습니다.


로드투오리진_케냐.psd_0005_IMG_0862.png Ⓒ Yunseon Lee

문제는 이 가격대를 감당할 수 있는 바이어가 많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블렌드용으로 커피를 사용하던 대규모 트레이더들에게 파운드당 8달러의 커피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아니었고, 결국 많은 상인들이 대안을 찾아 에티오피아로 이동했습니다. 이 흐름은 약 5년 정도 지속되었고, 그 사이 케냐 커피는 명성과 함께 시장의 중심에서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을 전후로 다시 케냐 커피가 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에티오피아 커피 가격이 상승하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를 형성한 케냐 커피가 다시 선택지로 떠오른 것입니다. 국제 거래 작물인 커피의 특성상 이런 흐름은 반복되며, 케냐 커피 역시 그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케냐 커피의 다채로운 풍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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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6-01-20 오후 4.10.58.png ⒸTERAROSA

적도에 위치한 케냐는 연간 두 번의 수확기를 가집니다. 재배지에 따라 재배되는 양의 차이가 있기도 하고, 한 나무에서 수확이 2번이라기보다 커피나무의 생육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열매 성숙의 시차’ 문제로 5월~7월, 10월-12월 이렇게 2번의 수확기로 분리됩니다. 5월부터 7월까지의 수확은 ‘Early Crop’, 10월부터 12월까지의 수확은 ‘Main Crop’ 혹은 ‘Late Harvest’로 불립니다. 스페셜티 커피의 대부분은 생산량이 많고 품질의 폭이 넓은 메인 크롭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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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투오리진_케냐.psd_0001_IMG_5146.png Ⓒ Yunseon Lee

케냐 커피의 풍미는 밝고 선명한 산미를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이는 케냐의 고지대 기후와 화산성 토양, 그리고 워시드 프로세싱 방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낮과 밤의 큰 일교차 속에서 천천히 익은 커피 체리는 높은 산미와 복합적인 향미를 품게 됩니다. 특히 케냐 워시드 커피는 발효와 세척 과정이 비교적 명확하게 관리됩니다. 이 과정은 커피의 단맛과 산미를 또렷하게 분리시키고, 컵에서 보다 깨끗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 결과, 석류나 블랙커런트, 히비스커스를 연상시키는 향미가 케냐 커피를 대표하는 풍미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많은 로스터들이 이러한 특성을 살리기 위해 미디엄 로스팅을 선택하지만, 케냐 커피는 다크 로스팅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발랄한 산미 대신 묵직한 바디와 초콜릿 같은 풍미가 살아나며, 이 때문에 커머셜 커피에서도 자주 사용되어 왔기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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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투오리진_케냐.psd_0007_20220524_075429.png Ⓒ Yunseon Lee

2012년 처음 케냐를 방문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케냐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동아프리카의 상업 중심지인 케냐는 빠른 도시화와 현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나이로비를 중심으로 한 도시는 마운트 케냐 인근 지역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커피 농장들이 높은 가격에 매각되며 사라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보던 넓은 커피 농장의 풍경은 이제 흔치 않은 장면이 되었습니다. 커머셜이든 스페셜티든, 케냐 커피가 차지해 온 위상을 떠올리면 아쉬움이 남는 변화입니다.


케냐 커피는 여전히 밝고 선명한 맛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석류를 닮은 새콤한 산미가 입을 열고, 히비스커스를 떠올리게 하는 향이 잔잔하게 이어집니다. 산미가 먼저 다가오지만, 그 뒤에는 차분한 단맛과 깔끔한 여운이 남습니다.


테라로사 새해의 첫 커피로 이 커피를 고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렷하지만 과하지 않고, 분명하지만 부드러운 한 잔. 오늘의 케냐 커피가 가진 현재의 얼굴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맛이라 느꼈습니다. 테라로사가 1월에 소개하는 [케냐 키아마바라 AA]로 케냐 커피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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