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wer of Coffee | 마헴베 성장 스토리
2010년 르완다 CoE (Cup of Excellence) 대회. 그곳에서 처음 만난 마헴베 커피는 독보적인 풍미와 품질로 여러 심사관들에게서 관심을 받았던 커피입니다. 그해 4위를 차지했던 마헴베 커피를 일본 바이어들과 함께 옥션에서 낙찰받으면서 테라로사와 르완다, 그리고 마헴베 워싱스테이션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1년 뒤인 2011년, 저는 직접 마헴베를 찾았습니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그 시절. ‘Nyamasheke Mahembe coffee washing station’이라고 적힌 작은 쪽지 하나에 의지해 하루 종일 길을 헤매다 겨우 도착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마헴베는 르완다 서쪽에 자리한 작은 마을입니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니마쉐케 지구에 속하고, 르완다의 젖줄이라 불리는 키부 호수(Lake Kivu)를 둘러싼 산속에 자리 잡고 있죠. 가까이 융게 포레스트(Nyunge Forest)가 있어 자연경관이 매우 뛰어나며 화산재 토양으로 그 토질 역시 매우 우수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르완다 수도인 키갈리에서 출발해 마헴베에 도착하기까지는 5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우면서도 먼 곳이 바로 마헴베입니다.
마을에 들어서자 처음 보는 동양인 여성을 보러 수백 명의 아이들이 어디서 인지 몰라도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모두들 이 낯선 방문자를 쳐다만 볼 뿐 아무도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새벽부터 시작된 그 여행의 피로감이 순식간에 몰려오며 느꼈던 암담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 당시 르완다 정부의 공용어는 프랑스어로 실제 영어만 가능했던 저와 프랑스어만 가능했던 그들 사이에 손, 발짓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 '커피를 사러 왔다. CoE 커피를 내가 샀다. 커피가 더 없냐' 등을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마헴베 워싱스테이션의 주인 저스틴은 그곳에 없었고 저는 그저 ‘Justine’을 부르며 동네 사람들의 ‘노(No)’라는 대답만 들으며 어쩔 수 없이 다시 키갈리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아쉬움만 남긴 첫 방문 후 1년 뒤, 정말 놀랍게도 2012년 COE 시상식장에서 저스틴과 저는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본인 부재 시 커피를 사겠다고 누군가 찾아왔고 여자이고 동양인이었다'는 이 단순한 정보로 일 년을 기다린 저스틴은 2011년 2012년 연달아 대회를 참석한 동양인 여자인 '저'를 시상식에서 찾아냈던 것입니다. 이번엔 저스틴의 친구 아르세니의 통역으로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동화 같은 시작이 2012년부터 지금까지 테라로사와 르완다 마헴베가 파트너로 일하게 된 계기입니다.
테라로사와 마헴베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 성장하기까지, 현실 속에서 넘어야 할 산은 정말 많았습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지금도 여전한 ‘자금의 부족’이었습니다. 저스틴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털어 마헴베 워싱스테이션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시설이라 해봐야 손으로 돌려야 하는 낡은 펄핑기 한 대, 몇 개의 나무로 된 드라이 테이블, 그리고 작은 건물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수확기가 되면 농부들에게 커피 체리를 사들여야 하지만, 현금이 없는 저스틴은 매번 커피를 담보로 돈을 빌려야 했습니다. 이는 커피 가격이나 품질과 상관없이 현금을 쥔 자의 결정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어 현실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그 안에서 벗어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2011년과 2012년에 출품한 COE 대회용 커피도 사실상 담보로 잡히지 않은 나머지 전부였고, 옥션을 통해 조금의 이익을 얻어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우리가 마헴베 커피를 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마헴베를 위한 재정적 지원책>이었습니다.
2012년 저스틴은 저와의 첫 만남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제게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혹시… 선금을 줄 수 있을까요..?"
생산되기도 전인 커피를 담보로, 갓 만난 동양인 바이어에게 선금을 요청하는 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의아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 당시 처음 보는 낯선 동양인 여자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저스틴 입장에선 그 말을 꺼내는 것조차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싶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순간 우리는 누구보다 진지했고 서로가 절실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당시 테라로사에게는 마헴베의 커피가, 저스틴은 테라로사의 지원이, 서로의 미래에 꼭 필요하다는 걸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긴 고민 끝에 우리는 결정했습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수확 전 50% 선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본격적인 거래를 시작하기로요. 그리고 그 이후로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 없이 매해 마헴베 커피는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고민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좋은 커피를…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2012년 첫 컨테이너가 도착했을 때, 한국 시장에서 ‘르완다 커피’라는 이름은 너무도 낯선 곳이었습니다.
‘르완다가 어디지?’ ‘거기서 커피가 난다고?’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지만 소비자들에게 생소한 새로운 산지를 어필하기란 생각보다 벽이 높았고 로스터로서 테라로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기회가 올 때마다 차분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이들의 커피가 왜 특별한지 이야기하는 것뿐이었습니다.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2016년.
회사 대표 메일로 한 통의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르완다 마헴베 커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구매할 수 있나요?
그 맛과 향을 매년 즐기고 있습니다.
모든 스톡이 소진되어 뉴크랍의 도착을 기다리던 그때, 메시지를 받은 그 순간, 우리가 걸어온 시간이 드디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마헴베 커피’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음을 실감했던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테라로사와 마헴베가 처음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5년이 흘렀습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이 작은 마을은 정말 많은 것을 바꿔냈습니다.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마헴베의 커피 농사는 그저 “굶지 않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당장의 끼니를 위해 농부들은 커피를 재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고품질 커피 생산이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그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때 이름조차 없던 이 작은 마을은 이제 전 세계 스페셜티 커피 바이어들이 ‘꼭 가보고 싶은 산지’로 꼽는 곳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변했습니다. 예전엔 생계를 위해 학교에 가지 못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Binogo School로 돌아가 학생 수가 넘칠 정도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교실이 부족해져 2부제로 수업이 진행될 정도니까요. 저스틴과 그의 가족 역시 삶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마헴베를 방문했을 때, 점심 식사라곤 콜라 한 병과 환타 한 캔이 전부였던 그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둘러앉아 감자튀김과 쌀, 콩죽으로 따뜻한 점심을 나누고 있습니다. 매년 커피 수확 때마다 조금씩 이어 붙여 짓던 집도 드디어 완공되었습니다. 뜨거운 태양을 잠시 피할 수 있는 거실이 생겼고,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소박한 게스트하우스도 들어섰습니다.
물론, 이 모든 변화가 저절로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마헴베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까지 10년 넘는 시간 동안 이들은 정말 쉼 없이 버텨내야 했습니다. 커피농사에 대한 노하우는 깊었지만 늘 부족한 자금과 낮은 생산량, 그리고 수확기를 제외하면 소득이 거의 없는 산지 특유의 구조적 어려움은 지금까지도 이들에게 큰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 더해진 급격한 기후 변화는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마헴베답게 그들은 또다시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엔 ‘직접 커피 농장을 조성하자’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주변 농가에서 체리를 사들여 가공만 해왔지만 이제는 자신들의 농장에서 안정된 수출량을 확보하고 싶다는 것이 저스틴의 새로운 계획입니다. 지금, 마헴베 마을의 민둥산에는 작은 커피 묘목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변화. 경영 방식의 세대교체입니다. 저스틴은 이제 영어가 능숙한 그의 아들 윌리를 마헴베 커피 회사의 운영 파트너로 인정하고 재무와 마케팅, 수출 업무를 맡기고 있습니다. 2013년, 소년의 모습으로 저를 맞았던 윌리는 이제 청년이 되어 매해 한국을 찾아와 소비지의 문화를 배우고, 한국의 커피 시장을 직접 경험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시도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 성공 여부를 지금 당장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멈추지 않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
그게 바로 마헴베 가족의 삶의 방식이고, 그들의 커피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의 10년도 여전히 기대하게 됩니다.
2025년 5월, 우리는 다시 마헴베를 찾았습니다.
15년 동안 이어온 파트너십을 기념하는 자리에 함께하며, 그곳에서 우리는 ‘커피로 맺어진 신뢰와 성장의 시간’을 축하했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담아 테라로사 유튜브 채널에서 ‘마헴베 15주년 기념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시작된 커피 한 잔의 여정이 어떻게 희망의 이름으로 피어났는지 함께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 TERAROSA YOUTUBE 처음 공개하는 테라로사x마헴베의 15주년 커피 이야기(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