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차서 더 깊게 스며든 해발 2600m의 콜롬비아 커피
전 세계 커피 산지 중 ‘에티오피아’ 다음으로 손꼽히는 곳을 떠올려보면, 많은 분들이 아마도 ‘콜롬비아’를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생산량과 품질, 그리고 커피 국가로서의 위상으로 보자면, ‘콜롬비아 = 커피’라는 등식이 붙을 만큼 이 나라는 오랫동안 커피 산지로서의 명성을 쌓아왔습니다.
2011년 9월, 비행기를 타고 여러 차례 환승을 거쳐 어렵게 도착한 곳은 해발 2,600미터 안데스 산맥에 자리한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Bogotá)였습니다. 낯선 고산지대의 고도는 생각보다 훨씬 위협적이었습니다. 식전 와인 한 잔도 채 비우지 못하고 심한 어지럼과 구토, 그리고 숨이 멎을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날 저는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땅’ 위에 서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은 동시에, 이 나라의 커피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쉽지 않은 이 환경이 오히려 콜롬비아 커피가 품질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된 이유라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콜롬비아라는 나라와, 그 땅에서 자라는 커피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 졌습니다.
지금부터, 콜롬비아의 커피와 핑크빛 커피 체리로 불리는 ‘핑크 부르봉’에 대한 여정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콜롬비아 커피는 커머셜부터 스페셜티까지 그 범위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는 커피의 품질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해 온 브랜드 전략 덕분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여러분도 잘 아시는 ‘콜롬비아 수프리모’입니다. ‘수프리모’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품질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며, 모자 쓴 콧수염 농부 ‘후안 발데즈’는 지금까지도 콜롬비아 커피의 얼굴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콜롬비아 커피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마케팅 때문만은 아닙니다. 카리브해와 태평양 사이,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 열대우림 사이에 위치한 이 나라의 독특한 지형은 지역마다 전혀 다른 향미의 커피를 만들어냅니다. 생산량에 따라, 지형조건에 따라, 심지어 강수량, 수확시기, 해발고도와 온도 등에 따라 주 생산지가 나뉘기 때문에 나라 전체로 보면 일 년 내내 커피가 생산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지형적으로 보자면, 콜롬비아 커피 산지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형태로 분포되어 남쪽은 주로 5~6월 여름이, 북쪽은 11월-12월 겨울이 주 생산 시기이며 중부 지역은 일 년 내내 커피를 생산합니다. 그래서 콜롬비아는 사실상 1년 내내 커피 수출이 가능한 몇 안 되는 나라입니다.
콜롬비아는 커피 등급 체계 역시 독특하게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 등급의 기준은 물리적 형태를 기준으로 하는데 커피 크기를 측정할 때 사용되는 생두의 지름을 기준으로 ‘스크린 사이즈’라는 객관적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1스크린은 약 0.04mm로 수프리모(17 이상), 엑스트라(16), 유러피언(15), UGQ(14) 등 생두 크기에 따라 품질 등급을 나눕니다. 많은 커피 애호가들이 엑셀소(EXCELSO)를 역시 스크린 사이즈의 하나로 알고 있지만 이는 수출 가능한 생두 (Green Coffee for Export)란 뜻입니다. 그러니 프리미엄, 수프리모를 포함한 수출 가능한 모든 커피가 엑셀소로 표기되고 불립니다.
물론 큰 생두일수록 높은 가격을 받는 경향이 있지만,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커피는 일교차 탓에 생두 크기는 작을 수 있어도 맛과 향은 더욱 깊고 조밀한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콜롬비아 커피는 워시드(Washed) 방식으로 가공되어 깔끔한 컵과 선명한 향미를 자랑합니다. 정부는 수출용 커피를 반드시 워시드 방식으로 가공하도록 규정했고, 이 정책은 콜롬비아 전체 커피 품질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최근 콜롬비아는 품종의 다양성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와 병해충으로부터 더 강한 커피 품종을 찾기 위한 노력 속에서 ‘핑크 부르봉(Pink Bourbon)’이라는 특별한 품종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품종은 처음에 레드 부르봉과 옐로 부르봉의 교배종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유전자 분석 결과, 두 품종과 전혀 연관이 없는 독립적인 품종임이 밝혀졌습니다. 오히려 에티오피아 숲에서 자생하는 야생 커피의 유전자 구조와 유사하다는 사실은 <콜롬비아 핑크 부르봉>의 특별함을 더해줍니다. 마치 파나마의 게이샤 품종 커피가 그 기원이 에티오피아 카파 지역의 그 어디였지만 파나마로 옮겨지면서 되려 본래보다 더 고품질 커피가 된 것과 같이 콜롬비아 핑크 부르봉 역시 에티오피아의 깊은 숲 속 야생에서 시작되었지만 긴 여정 끝에 콜롬비아에 도착해 이제 콜롬비아 핑크 부르봉 만의 맛과 향을 지닌 품종이 되어버린 것이죠.
핑크 부르봉은 붉지도 노랗지도 않은, 오묘한 오렌지빛 체리를 맺습니다. 그 체리에서 얻은 커피는 때로는 상큼한 오렌지 과즙처럼, 또는 히비스커스처럼 진하게 스며들기도 합니다. Cranberry, Mango, Juicy… 그 안에서 피어나는 향미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커피의 풍미를 남깁니다.
상큼한 오렌지 과즙과 히비스커스의
진한 향이 느껴지는 핑크 부르봉
콜롬비아 핑크 부르봉에서 이런 맛과 향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이 특별한 품종은 앞으로 콜롬비아 커피의 미래를 밝혀줄 핑크빛 가능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