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커피의 종류와 풍미
에티오피아에는 정확히 몇 종의 커피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무수히 많은 종이 숲 속에 자생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새로운 종이 발견되곤 합니다. 커피의 시작이 포레스트 커피(Forest Coffee)였고, 이 야생 커피들은 오랜 시간 교배와 변종을 거쳐 수많은 새로운 종을 만들어왔습니다.
커피 중 아라비카 커피는 본래 자가수분을 통해 열매를 맺기 때문에, 교배와 변종이 쉽게 일어납니다. 더구나 포레스트 커피들은 숲 속의 다른 나무들과 섞여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스스로 강한 생명력을 발달시켜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숲에 들어가 작은 구역만 살펴보아도, 언뜻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잎 모양, 가지의 뻗는 방향, 열매 크기와 색, 열리는 시기까지 모두 다른 커피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성과 강한 생존력은 에티오피아 커피의 근본적인 특징이 되었고, 지금도 씨앗용으로 많이 활용됩니다.
수천 년 동안 숲 속에서 자라난 이 다양성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을까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커피 업계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에티오피아는 '커피 종의 근원지'이자, 동시에 '가장 많은 커피 종이 자생하는 나라'라고 말이죠. 숲에서 자생하며 끝없이 변이와 교배를 거듭한 수많은 품종들은 지금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 커피 시장이 스페셜티에 집중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단순히 커피 맛을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느 농장의, 어떤 종이 자라고 있는가”라는 구체적 질문이 던져지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에티오피아 정부는 종에 대한 연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모든 품종을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지역별 대표 품종을 정리하고 환경에 적합한 종을 밝혀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연구는 처음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지역별 종자 연구소를 세워 종에 대한 심층 연구를 이어갔지만, 끝없이 늘어나는 변종과 비용 문제로 결국 중단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스페셜티 시장의 성장과 함께, 고품질 커피의 지속 가능한 생산과 정확한 정보가 요구되자 다시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전 세계 스페셜티 시장을 뒤흔든 ‘파나마 게이샤’의 기원 역시 에티오피아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입니다. 1930년대, 카파 지역과 아비시니아 고원에서 건너간 커피는 케냐에서 재배에 실패했고, 다시 탄자니아와 코스타리카를 거쳐 파나마로 옮겨갔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이 커피가 수십 년 뒤, 파나마에서 세상을 뒤흔드는 스페셜티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한 것이지요.
이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에티오피아야말로 스페셜티 커피의 본고장이며, 그 다양성과 독창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전 세계의 커피 바이어들은 에티오피아가 스페셜티의 미래라는 확신을 품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생산지의 이름을 따서 상품명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판매되고 구매됩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의 지명은 커피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지역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잘 알려진 시다모와 예가체프 모두 커피가 생산되는 지역명이죠. 지역명에 따른 에티오피아의 커피 종류는 크게 8종으로 나뉩니다.
짐마(Djimmah) : 수출량의 50%를 차지하는 대표 커머셜 커피. 강한 산미와 묵직한 바디로 에스프레소 블렌딩에 많이 쓰입니다. 대부분 포레스트 커피이며 내추럴 가공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짐마 커피를 워시드 커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스페셜티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리무(Limu) : 짐마 인근의 작은 지역이지만, ‘향신료 같고 와인 같은(spicy & winey)’ 풍미로 차별화됩니다.
베베카/테피(Bebeka/Tepi) : 카파 지역의 낮은 고도에서 자라 부드러운 산미와 바디감을 지닙니다. 강하지 않고 균형 잡힌 맛으로 에스프레소 블렌딩의 베이스로 자주 쓰입니다.
올레가/김비/레켐티(Wollega/Gimbi/Lekempti) : 단맛이 좋고, 에티오피아 커피 중 생두 크기가 가장 큽니다.
예가체프 (Yirgacheffe) : 에티오피아의 남쪽 지역인 게디오(Gedio)에 위치한 곳으로 해발 2000m 이상 고산지대에서 재배되며, 재스민 향 같은 플로럴과 정제된 산미로 ‘에티오피아 최고의 커피’라 불립니다. 이 지역은 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모든 커피가 워시드 가공입니다.
시다모(Sidamo) : 레몬 같은 산미와 오렌지 향을 품으며, 워시드와 내추럴 두 방식 모두 사용됩니다. 내추럴 시다모는 강한 단맛과 깊은 바디를 보여줍니다.
하라(Harrar) : 동부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며, 와인 같은 풍미와 과일 산미, 스파이시한 향으로 유명합니다. 생두 색도 다양합니다.
발레(Bale) : 해발 4050m의 발레 마운틴 숲에서 자라는 100% 포레스트 커피. 발레 마운틴의 정상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얼음이 얼 정도로 매우 춥지만 한낮은 햇볕이 매우 따가운 일교차가 매우 큰 지역입니다. 모든 커피가 야생으로 자라서 인지 유독 다크 초콜릿과 야생 꽃 향, 강한 개성을 지닌 독특한 커피입니다.
이렇게 다채로운 지역별 개성 덕분에, 에티오피아 커피는 바이어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가장 넓은 산지라 할 수 있습니다.
커피가 거의 유일한 수출품인 에티오피아는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 스페셜티 커피 업계가 요구하는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의 흐름에 부합하지 못하는 정책을 펼치며 스스로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도입된 ECX(Ethiopia Commodity Exchange) 제도입니다. 주요 농산품을 일괄적으로 거래하도록 하면서, 스페셜티 시장이 중요하게 여기는 원산지의 정체성과 세밀한 특성을 가려버린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 바이어와 소비자들은 여전히 에티오피아 커피를 찾습니다. 다른 어느 산지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향미, 그리고 최종 소비자까지 매혹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에티오피아 커피는 수많은 종과 산지, 그리고 가공 방식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얼굴이며, 지금도 세계 스페셜티 시장의 중심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테라로사에게 에티오피아 커피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적어보겠습니다.
에티오피아 산지의 생생한 수확 과정을 테라로사 유튜브 채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매일 마시고 즐기는 커피가 그들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정성스러운 순간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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