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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기술

소통이 엇갈리는 순간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찾아온다.

by 서른리셋

회의에서, 카톡으로, 혹은 이메일 한 줄에서도 우리는 수없이 소통한다.

하지만 그 소통이 어긋나는 순간은 너무나도 쉽게 찾아온다.

‘내가 이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닌데…’라는 상황,

누구나 겪어본 적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흔히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디자인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다. 디자이너는 그림으로 말하고,

고객은 언어로 설명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하나의 디자인이라는 결과물로

브랜드의 방향을 함께 그려나가는 파트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기 시작하면 작업은 곧바로 꼬여버린다는 것이다.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기술은 여기서 힘을 발휘한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내 의견을 정확히 전달하는 힘.

이 능력이 있을 때 비로소 디자인은 제대로 된 결과물을 향해 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정비사 로고를 만들거에요. 귀엽게 해주세요”라고 말한다.

디자이너는 귀여우면서도 전문적인 정비사의

느낌을 떠올리며 작업을 한다.

하지만 결과물을 받은 고객은 당황한다.

“어… 이건 제가 생각한 귀여움이 아니에요.”


고객이 생각한 귀여움은 캐릭터 짱구처럼

눈이 크고 짧고 통통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서로 전혀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흔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친절하지만 단호한 말하기’다.
여기서 말하는 단호함은 “죄송하지만 이게 귀여운 거예요”라고 선을 긋는 게 아니다.
진짜 단호함은, 고객의 말 속에 담긴 감정과 의도를 정확히 읽고

그 안에서 디자인의 기준을 각인시켜주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사례들은, 실제 디자인 과정에서 오해가 가장 자주 발생하는 순간들이다.

실제적으로 가장 민감한 상황들이니 꼭 집중해서 읽어보자.



1. 공포의 그 말, ‘알아서 해주세요.’

디자이너에게 가장 무서운 고객의 말은 단연

'알아서' 이다.

“알아서 귀엽게요.”
“알아서 멋지게요.”
“딱 보면 전문적인 느낌 나게요.”

이런 요청이 들어오면 디자이너는 혼돈이 된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고객은 로고는 처음 만들어보는 경우가 많다.

회사 운영, 자영업 시작, 유튜브 채널 개설 등 대부분이 사업을 준비하며

디자인이 낯선 상황에서 의뢰한다.

당연히 어떻게 요청해야 할지 몰라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위 사례처럼 고객이 생각하는 ‘귀여움’은

카카오 라이언캐릭터처럼 단순하고 또렷한 느낌인데,

디자이너는 곰돌이 푸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단어라도 각자 떠올리는 이미지가 너무 다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고객님, 요청처럼 귀엽게 제작해드리고 싶습니다!

고객님이 생각하시는 ‘귀여운 느낌’이 어떤 방향일지 정확하게 제작도와드리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로고 예시를 2~3장만 캡처해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디자인 방향을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고객은 로고 사진을 찾아보게되고

자신도 몰랐던 디자인의 방향성을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

디자이너는 그 기준에 맞춰 디자인할 수 있어 작업 효율도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방법이다.
무작정 “알아서 할게요”가 아닌, 함께 기준을 세우는 대화가 핵심이다.




2.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표절 아닌가요?”

로고 디자인을 받고 나서 고객이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이 말은 디자이너에게 큰 충격이다.

하루 종일, 아니 며칠 동안 마음이 불편해진다.
하지만 이 말을 무조건 공격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고객의 마음을 먼저 읽어야 한다.

요즘은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처음 만드는 로고가 혹시 표절이면 어쩌나,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두려움이 말로 나타난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친절하지만 단호한 말’이다.

불안해하는 고객의 마음은 다독이되,

디자인의 진정성과 정당성을 분명히 설명해주는 태도다.

“고객님, 혹시 로고가 표절로 보이셨을까 걱정되셨을 것 같아요.

요즘은 저작권 문제도 많고, 충분히 신경 쓰이실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로고는 디자이너가 한 획 한 획 직접 만든 순수 창작물입니다.

비슷한 느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참고나 표절은 전혀 없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혹시 비슷하게 느껴지는 로고가 있다면 보내주세요.

그 부분을 기준 삼아 원하신다면 수정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고객은 안심하고, 자신이 불편했던 지점을 솔직하게 말한다.
디자이너는 그 의견을 바탕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조율하면 된다.

핵심은, 감정을 흔들리지 않고 부드럽게 안내하면서

디자인의 기준은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기술이다.


3. 아는 사람이 로고 보더니 별로래요.

나왔다, 아는 분! 그리고 아는 동생, 주위 사람 총출동!

'지인에게 보여주니 로고가 별로라고하네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선택해놓고 이제 와서 왜…?’

라는 생각이 스칠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고객은 너무 마음에 든 로고라 자랑하고 싶어 주변에 보여줬을 뿐이다.

그런데 지인들은 예상치 못한 반응이 보인다.

"로고 생각보다 별로인데?"

"음 색깔이 업장이랑 안 맞는 것 같아."

지인들의 말을 듣고 고객은 혼란스러워진다.
“정말 별로인가…?”
디자인을 선택한 자신까지 흔들리고, 서운함과 의문이 뒤섞인 채

다시 디자이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게 된 상황이다.

이럴 때 디자이너는 로고의 방향성과 의도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글자와 그림을 함께 사용한 타이포그래피 로고라면

이런 피드백이 자주 나온다.

타이포그래피 로고는 글자를 단순히 쓰는 게 아니라

글자 안에 브랜드 이미지를 표현해 글자와 그림이 어우러지도록 만든다.

그래서 보는 사람에 따라 “글자가 덜 보인다”는 말이 나올 수 있지만,

사실 그게 디자인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이럴 때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이 로고는 브랜드의 핵심 이미지를 담은 디자인입니다.

글자와 그림을 따로 나누지 않고 조화롭게 표현한 타이포그래피 방식으로 제작했습니다.

타이포그래피 로고는 글자를 뚜렷하게만 보여주는 것보다

글자와 그림이 어울려 하나의 인상을 줄 때 더 강한 효과를 냅니다.

또한 로고 아래 브랜드 이름을 명확히 넣어 읽기에도 문제가 없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고객은 다시 로고를 바라보게 되고 대부분 안심하며 수긍한다.

핵심은 친절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신념을 분명히 드러내는 태도다.

고객의 감정적인 반응에 순간 속상할 수 있지만,

먼저 그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한 뒤,

디자이너로서의 전문성과 판단을 단호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있을 때, 신뢰가 생기고 디자인도 제 가치를 인정받는다.



결국 디자인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이다.

그 마음을 읽고 존중하되, 내가 세운 기준을 흐리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디자이너의 힘이다.




*본문의 로고 이미지는 디자이너가 제작한 샘플 디자인으로,

도용 및 상업적 사용은 어려운 점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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