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치며 알아간다.
아빠!
큰애가 나를 보자 달려와 안겼다. 둘째는 안으려 하니 몸을 뒤로 뺀다. 8개월 된 막내는 곧 울음을 터뜨릴 태세다.
큰애를 안고, 터미널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10년이 넘은 중고 소나타는 언제 설지 몰라, 늘 조마조마했다. 며칠 전 유아용 카시트를 구입해서 뒷좌석 양쪽 창가에 단단히 고정했다. 거기에 둘째와 막내를 태우고, 가운데 자리에 큰애를 앉혔다. 강제로 카시트에 앉혀 어리둥절해 있던 두 녀석이, 엄마가 앞자리에 앉자마자 울먹이기 시작했다.
차가 출발하니, 둘째는 울부짖으며 묶인 줄에서 탈출하려고 용을 쓴다. 공항을 빠져나갈 즈음 마침내 탈출해서, 앞자리 엄마한테 넘어왔다. 할 수없이 큰애를 앞자리에 태우고, 아내가 뒷자리 가운데 앉아 양 옆의 아이들을 번갈아 달래며 집으로 향했다.
2002 월드컵 개막 20일 전, LA 하늘은 눈부시게 높고 깨끗했다.
우리 아파트는 12가구짜리 작은 이층 건물이다. 혼자 살 때는 이웃과 교류가 거의 없었는데 가족이 오자, 자연스레 이웃이 생겼다. 바로 옆집, 셀레스떼는 큰애와 동갑내기로 작년에 아르헨티나에서 이민 온 한인 가정의 딸이다. 그 옆집에도 멜라니아라 불리는 또래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부모는 페르시아계 아르메니아인이었다.
셋은 자주 함께 놀았다. 한 명은 영어, 하나는 스페인어, 다른 하나는 한국어밖에 모르는데, 서로 노는데 아무 지장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은데, 어쩌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지 신기했다. 마음이 맑고 깨끗하니, 장벽이 없었다. 언제나 진짜 벽은 마음에 있다.
학교는 6월 초면 방학에 들어가, 학생 등록을 받지 않았다. 큰애와 둘째를 어딘가 보내 영어도 배우고, 빨리 적응시키고 싶었다. 우연히 동네 교회에 걸려있는 ‘여름 성경학교’ 현수막을 보고, 무릎을 쳤다. 가격이 저렴하고, 식사도 제공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4시간 계속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인근 동네까지 샅샅이 뒤져 8군데 교회에 등록해서 보냈다. 똑같은 프로그램인데도 아이들은 지루해하지 않고 재밌어했다.
두 달 정도 지나니, 집에서 영어 소리가 자주 들렸다. 엄마한테 영어와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섞어서 쓴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뭔가 중요한 일을 한 것 같이 뿌듯했다.
아내는 미국에 오기 전, 외국인과 말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마트 계산원이 간단한 인사를 해도 당황스러워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엄마 틈에서 보조 교사 일도 기꺼이 했다. 여기저기 아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억척스럽게 찾아다녔다. 인원 제한이 있으면, 아침 일찍부터 기다려 등록했다. 아이 때문에 엄마도 빨리 적응해 갔다.
회사는 광고주가 하나둘씩 늘며 조금씩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월급을 가져다줄 수 없으니, 생활비를 최대한 아껴야 했다. 애들이 디즈니 채널을 보고 싶다고 졸랐지만 해줄 수 없었다. 인터넷도 전화선을 연결해 간신히 이메일만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하는 수 없이 TV 대신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거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었다. 점점 재미를 붙여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근처 도서관에서 한 번에 20~30권씩 책을 빌려다 아이들 곁에 쌓아두었다. 마땅히 놀러 갈 데도 없으니, 도서관이 곧 놀이터였다. 도서관에는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았다. 가끔 마술사가 큰 뱀을 들고 와 매직쇼를 열었고, 동화를 읽어주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독서량은 또래에 비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이민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어 실력 부족이 우리 집 아이들에겐 거의 문제 되지 않았다.
결핍이 가져온 반전이었다.
좀 비싸도 유태인 변호사로 해.
이민국에 취업비자 서류를 접수하려는데, 전 사장이 비버리힐즈에 위치한 유태인 로펌을 소개해 주었다.
“거기 일 처리가 똑 부러져. 나도 거기서 했는데 아주 잘해.”
전 사장을 통해 상담 예약을 하고, 한인 사무장 사라를 만났다.
임대료가 비싸기로 이름난 지역답게, 사무실은 대리석 바닥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분위기 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로비에 들어서자 직원이 회의실로 안내했다. 곧이어 사라가 들어왔다. 30대 초반의 한인 여성, 첫인상은 예민했다.
말을 중간중간 끊으며 “죄송합니다, 시간 없으니, 묻는 말에만 답해주세요”라고 말하는데 좀 거슬렸다. 언어의 내용만 다를 뿐 전해지는 느낌은 '당신이 궁금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니 모르면 잠자코 있어라.'는 억압에 다름 아니었다. 말은 내용보다 태도가 더 중요했다.
그녀는 서류를 빠르게 훑어보더니 “별 문제없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순간, 조금 전 까칠한 태도가 오히려 전문가의 자신감으로 다가왔다.
‘잘 선택한 것 같네.’ 그러나 희망 사항이었다.
한 달 남짓 지나, 사라에게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시간 될 때, 저희 오피스에 좀 오세요.”
“왜 그러시죠? 뭐 안 좋은 일인가요?”
‘좋은 일이면, 바로 이야기를 할 텐데, 왜 굳이 오라고 할까?’ 불길한 마음이 엄습한다.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고 급히 차를 몰았다. 사장도 함께 동행했다.
“뭐 별일 있겠어. 최고 유능한 변호사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오후 4시가 지난 시간이라 교통 체증이 심해,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거의 50분이 넘게 걸렸다. 주차장에서 사무실로 거의 뛰어 올라가니 사라가 우리를 변호사에게 데려간다. 변호사는 60대 정도로 백발에 건장한 체격이었다. 보자마자 두툼한 손으로 악수를 청한다. 다소 권위적으로 보였다.
사라는 옆 테이블에 살짝 걸터앉아 크게 웃으며 변호사와 이야기 나눈다. 그와 꽤 친한 체하며 과장된 몸짓이 묻어있다. 다분히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작위적인 느낌이다, 내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변호사가 이민국에서 온 편지를 건넨다. 내용을 읽어보니 ‘우리는 당신 서류를 받지 못했다. 30일 이내에 출국하지 않으면, 불법 체류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말하며, UPS 영수증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전혀 잘못이 없습니다. 분명히 서류를 정상적으로 보냈고, 이민국에서도 받았다고 이렇게 사인했습니다.”
변호사의 요지는 간단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그리고 증거 - UPS 영수증 - 를 제시하는 것뿐이었다. 나와 가족의 미래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간신히 입을 떼려는 순간, 변호사는 의자를 밀고 일어나 “이제, 사라하고 의논하시죠.” 아무렇지도 않게 방을 나갔다.
잠시 멍하니 있었다. 미국 시스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 무책임함에 어이가 없었다.
변호사가 나간 뒤, 떨리는 음성으로 사라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죠?”
“글쎄요, 알아보고 있어요. 우선, 이민국에 이의 제기를 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네요.”
“가능성은 몇 퍼센트 정도인가요?”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해요. 요새 너무 까다로와서요. 아, 그리고 진행하시려면, 별도로 계약하셔야 해요.”
"별도 계약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꾹 참았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에요? 너무 무책임하지 않아요?" 화를 간신히 억누르며 낮게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약자의 최소한의 항의였고, 권리 주장이었다.
사라는 언성을 높여 소리쳤다. 그녀는 다분히 다혈질적이었다.
"뭐라고요? 그렇게 감정적으로 하지 마시고, 법으로 하세요. 저는 다음 미팅 있으니 이만 끝내겠습니다." 내뱉듯 말하며 휙 나가버렸다.
그녀에게 나는 더 이상 고객이 아니라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었다. 변호사가 자리를 뜨니, 변호사처럼 행동했다.
전 사장과 나는 커다란 방에 덩그러니 남겨져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녀가 앉았던 회전의자는 저만치 휑하니 떨어져 있었다. "이만, 가시죠." 내가 무겁게 말을 꺼내며 방을 나섰다.
사무실 입구에서 한인 부부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들과 함께 사라를 만나고 있었다. 그들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정말, 잘 부탁드려요"를 반복했다. 사라는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그들을 데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사라는 나같이 힘없고 보잘것없는 자가 감히 자기에게 항의한 것에 어이가 없었던 걸까?
분명히 이것이 그녀의 본심이며, 인격이었다. 사람은 자기 인격대로 행동한다.
돌아가는 차 안, 전 사장이 쭈뼛쭈뼛 망설이며 말을 꺼냈다.
“잘 되겠지. 너무 걱정 말라고…”
위로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혼자 있는 것보다는 곁에 있어주니 훨 나았다.
다음 날, 목사님이 소개해준 O 이주공사 손 사장을 만나러 갔다. 목사님과 해병대 동기라고 했다. 한인타운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어제 비버리힐즈 사무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고 초라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한국인 직원 세 명이 일하고 있었다.
손 사장은 50대 중반의 남자로 눈빛이 상대방을 압도할 정도로 강렬했다. 다부진 몸매는 한눈에 봐도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으로 보였다. 내가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사라네 오피스에서 이도저도 못하는 사람들, 우리한테 많이 와” 초면인데 대뜸 반말로 말한다. 그런데 묘한 친근감을 느꼈다.
“어떻게, 잘 될까요?” 머뭇 거리며,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일단, 이민국에 어필해야지. 결과 나올 때까진 합법이야.”
“언제쯤, 나올까요?
“이민국 일은 아무도 몰라.
이런 케이스는 보통 몇 년 걸려. 그동안은 합법이야.
3년만 있는다며? 3년 안에 안 나와. 걱정할 것 없어.
그다음에, 한국에 돌아가면 아무 문제없어.
애들은 어려니까 불법 체류하고 전혀 관계없으니 걱정할 것 없고”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어주었다.
“어제 목사님이 밥 사주면서 그냥 해주라고, 얼마나 부탁하는지… 공짜야”
인생은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미리 단정 짓기보다,
잠잠히 지켜보는 것 -
절망적으로 보여도
부딪쳐 보면,
오히려 역전된다.
인생의 묘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