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재해석

존재 자체가 의미다.

by 물 긷는 자 연지신


저희 비행기는 잠시 후,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부 시간 오전 7시, 이제 곧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젯밤 11시, LA 공항을 출발해 5시간 남짓 걸렸다. 미국 사람들은 이런 비행 편을 레드-아이 플라이트(Red-eye flight), 잠을 못 자 ‘충혈된 눈 비행’이라 부른다. 시간을 아끼려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기내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방송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주섬 주섬 자리를 정돈한다. 온라인으로 가장 저렴한 티켓을 구입해서인지,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늘 뒷자리에 배정됐다.


창밖에 간간이 구름이 지나가고, 그 아래로 갑자기 도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비행기가 휙 선회하자, 드넓은 대서양 위에 요트들이 점처럼 흩어져 해안선을 따라 고요히 정박해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보스턴은 바다와 요트, 높은 건물 사이를 줄지어 지나는 자동차, 미국 역사를 품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어우러진 멋진 그림이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며 오래된 엘리베이터 탄 것처럼, 쿵쿵 거리며 진동이 전해진다. 귀가 먹먹해지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의자 팔걸이를 잡은 손에 자연스레 힘이 꽉 들어간다. 이어 쿵 소리와 함께 바퀴가 땅에 닿았다. 간단한 기내 안내 방송과 함께 잘 가라고 인사하며 맺는다.

1월 보스턴은 LA와 달리 꽤 추웠다. 숨 쉴 때마다 입김 때문에,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려 잘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빙판과 길에 쌓여있는 눈이 영락없는 한국의 겨울 모습이었다. 조심조심 종종걸음을 하며, 길을 재촉했다.


큰 딸을 만나러 하버드 근처로 간다. 딸은 대학 졸업 후, 보스턴의 컨설팅 회사에서 일한다. 오후 1시에 있을 딸 시민권 선서식에 참석하려고 왔다. 미국 이민 생활은 BG 즉, 영주권 이전 - Before Green Card, 와 AG, 영주권 이후 - After Green Card로 나뉜다. 내 평생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 우리 가족이 영주권 받았을 때 그리고 큰 딸 대학 합격했을 때였다.


셔틀버스를 타고 전철역으로 가서 10여분쯤 기다리자 하버드 행 전철이 들어왔다. 옆에 서 있던 백인 청년에게 방향이 맞는지 묻자, 자기도 같은 곳에 간다고 따라오라고 한다. 딸은 내 생애 처음 만난 하버드 학생인데, 여기는 참 흔하다. 그 아이도 입학 후 1년 동안 ‘내가 하버드 학생이라니… 이게 꿈인가 생신가’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약 20분 뒤, 하버드 역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나오자 곧장 '하버드 스퀘어(Harvard Square)'라 불리는 광장이 펼쳐진다. 이곳은 하버드 학생들과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 가게, 카페, 음식점이 일 년 내내 북적인다.

딸이 자주 간다는 ‘Blue Coffee’에 들러 기다렸다. 오전 8시를 막 지난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는 커피 맛을 잘 모른다. 어쩌다 믹스 커피나 타 마시는 정도다.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세상의 장사는 절반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30분 후에 도착한다”는 딸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학교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딸이 대학에 합격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벌써 6년이 다됐다.




2014년 12월 15일 오전 11시 30분, 사업장에서 연말 행사가 있었다. 매장 안에는 약 60여 명의 고객이 북적였다. 아내는 음식 준비와 손님 응대로 정신없이 바빴다. 나 역시, 이곳저곳 다니며, 손님과 대화하며,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딸아이가 엉엉 운다. ‘웬일이지? 무슨 일 있나…’

가슴이 철렁했다. “어... 무슨 일 있어?”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흐느낌은 금세 통곡으로 바뀌었다.

“아빠, I got into…” 바깥 시끄러운 소리와 딸 울음소리가 뒤섞여 잘 알아듣지 못했다.

‘아, 오늘이 대학 조기 전형 발표날이지. 떨어졌구나’


예일대 조기 전형에 지원했는데, 떨어졌구나 생각했다. ‘거기가 어디라고…’ 딸이 예일대를 목표로 한다고 할 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고, 떨어지면 어떻게 위로할까부터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같은 생각이었다. 난다 긴다 하는 애들도 그 학교에 합격한 애를 보지 못했다.

“그래… 염려하지 마. 아직 기회가 남았잖아. 더 좋은 데가 있겠지’ 나는 듣지도 않고, 대충 위로했다. “No, No, 아빠, I got into Yale.”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뭐? 합격... 했다고?” 순간, 매장 안에 있던 시선들이 쏟아졌다.

“Yes, I got into Yale.” 이 소리에 미국 도착하던 날, 나를 보고 달려와 안기던 그 모습이 오버랩됐다.


이후, 딸은 하버드, 프린스턴, 스탠퍼드에도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운동으로 치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것과 같았다. 신문에도 크게 보도돼 유명인사가 됐다.


딸은 하버드로 진학했다. 이민자에게 하버드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신분 상승과 성공의 동의어였다. 주위에서 “이제, 아메리칸드림을 이뤘으니 얼마나 좋아. 밥 안 먹어도 배부르지?”

가문의 영광이라며 부러워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성취를 얻고 보니 나도 모르게 마냥 구름 위를 둥둥 떠다녔다. 욕심이 점점 커지며 더 잘해주길 바랐다.

구름 위에서 떨어지는데 1년이면 충분했다.


1학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여기저기에 문신을 새겼다. 귀에 이어링도 몇 개씩하고 나도 안 하는 담배를 피웠다. 갑작스레 너무 변해서 왔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듣기 싫어했다.

“이제 그만 좀 해. 아빠는 맨날 가르치려고만 해” 이렇게 외치고 문을 꽝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저렇게 부모 고생하는 것은 모르고 자기만 알까’ 괘씸하고 분하고 허탈했다.

소리치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비아냥 거리는 말투와 표정이었다.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다소 냉소적으로 “Don’t lecture me (그만 가르치려 드세요.)” 이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내뱉듯이 말을 던지고 자기 방에 들어가 친구와 웃고 떠드는 전화 소리가 들리면, 야속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높이 올라간 만큼 떨어지는 아픔도 비례했다.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면 기쁜 건 사실이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영주권이 없을 때엔, 영주권만 받으면 꿈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시민권을 받았어도 여전히 꿈은 저만치 떨어져 있었고, 새로운 결핍이 생겼다.

진짜 내 모습을 볼 때까지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통과해야 했다. 나를 알아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었다.




30분이 지나, 딸이 “하이” 하면서 웃으며 들어왔다.

잠시 커피를 함께 마시고 그 자리를 나섰다. 찰스 강을 건너니 흰색 첨탑이 높이 솟은 큰 애 기숙사, 던스터 하우스가 보였다. 함께 전철을 타고, 다운타운에 위치한 시민권 선서식장으로 갔다.


지금까지, 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이민 가정의 문화 차이, 언어의 장벽 때문 만은 아니었다.

‘낯선 미국 땅에서, 별 도움도 안 되는 내가 애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마음이 시렸다. 이어 아버지 생각이 났다.


오십 대 초반,

3년간 병치레, 무기력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

힘들었을 때, 얼마나 그리웠는지.

‘그냥, 그 자리에 계셔서,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


그땐 몰랐다.

이제야 알았다.


꿈은 존재의 발견,

바로 곁에 있다.

이걸 아는 것이,

꿈을 이루는 것


시민권 선서식 후, 이민국에서 준 작은 성조기를 흔들고, 딸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 15년 전,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 날 보자마자 달려와 안기던 그 모습.


존재 자체가 의미가 였다.

이전 09화새행착오 - 새로운 출발, 어설픈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