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반전의 룰

믿어 주니까, 믿어 주더라고...

by 물 긷는 자 연지신
우리 비행기는 약 30분 후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기내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자리를 정돈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2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11년 만에 처음.


‘덜커덩’ 바퀴 펴지는 소리와 함께 급히 고도를 낮춘다.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먹먹해지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침을 삼켜 보지만 그대로다. 비행기 창 밖으로 불빛이 선명하다. 한국은 지금 새벽 5시. 밖은 어두웠다. 쿵 소리가 나며 땅에 닿았다.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라지만, 이 무거운 쇳덩이 안에 몸을 싣고 공중에 떠있다는 생각은 완전한 신뢰를 갖기에 항상 역부족이었다. 기류 변화로 기체가 흔들리면 여지없이 불안이 엄습했다.

땅에 내려와야 비로소 '휴' 하고 한숨이 나왔다. 비행기를 탄 내 모습은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비행기가 터미널에 도착하자, 손님들이 일어서서 짐을 챙겼다. 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미리 일어서서 나갈 준비를 한다. 한국 사람들만 급한 게 아니다.


1월의 한국은 꽤 추웠다. 영하 10도. 어려서 익숙했던 날씨 때문인지 금세 적응이 됐다. 광명 KTX 역으로 가는 첫 버스는 6시 30분이 돼야 출발했다. 아직 1시간 정도 남았다. 공항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커피 마시며 기다렸다. 버스가 왔다. 오른쪽 창가에 앉았다.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잘 도착했어? 어디쯤이야? 아직 밥 안 먹었지?” 어머니 관심사는 여전했다.


바다와 육지를 잇는 다리,

저 아래 띄엄띄엄 떠있는 배 몇 척,

불이 켜져 있다.

지금 저 안에도 사람이 있겠지.

뭐 하며 살까?

버스 안에서 어딘가 향해 달리는 나도,


저들 눈엔 그리 보이겠지.


광명역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셨다.

아들이 온다는 기쁨과 설렘으로 잠도 설치신 것 같다. 나를 보자마자 손을 꼭 잡으셨다. 온기가 마음으로 전해졌다. 나이가 들어도 엄마 손에 쥔 아기였다.

이 안도감. 본래 엄마와 나는 한 몸이었으니까...


집에 들어서자 따뜻했다. 방 안 벽에는 온통 우리 애들 사진으로 도배 돼있었다. 미국으로 떠나올 때 그 모습에 멈춰있었다. '몸과 마음이 따뜻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짐을 풀고, 어머니가 준비한 아침을 먹었다. 과일, 고구마, 삶은 계란, 우유—이게 전부였다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드신다. 한결같다. 이러니 연세에 비해 건강하시다. 충치도 없고 아직 걸음도 단정하시다.

어머니를 보면 타고난 것보다, 후천적인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어머니는 아들 건강을 위해 조금만 주시며, 계속 “부족하지 않아?” 물으신다.

같은 말을 몇 번이고.

표현은 달라도, “아들아, 사랑해.”

반찬을 계속 내 앞으로 내민다.

내 손이 짧아서도, 상이 커서도 아니라


그동안 못다 한 말 -

온몸 세포로 말씀하신다.


행여 입을 열면,

목소리가 떨릴 거야.

그때는 어머니도 우신다.

걷잡을 수 없다.


그저 말없이

주는 대로 먹고 마셨다.

겨우 한마디.

“잘 먹었습니다. 맛있네요.”




광명 재래시장으로 갔다. 이곳은 전국적으로 유명해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명절이 가까우면,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친구가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장사하고 있다. 골목골목 추억이 가득했다.


성철은 국민학교 때부터 40년 지기. 광명 친구들은 거의가 국민학교부터 지금까지 친구다. 이젠 안양, 하남, 성남 등 각처에 흩어져 살지만, 모임은 거의 광명에서 갖는다.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만나는데, 나이가 들며 더 자주 모인다. 만나면 부담 없고 재밌다. 나야 어쩔 수 없이 단톡방을 통해서만 만나지만, 그것만으로 유쾌하다.


성철은 털모자를 눌러쓰고, 두툼한 옷을 껴입고 잔뜩 움츠린 채 앉아 있었다. 곁에 아내는 부지런히 손님을 맞이한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아버지가 하던 장사를 물려받아, 그 자리에서 계속하고 있다. 어림잡아 50년이 넘었다. 아내와는 고등학교 때 만나 학교 마치고 군대도 가기 전에 결혼했다. 친구들 중에 유일하게 손녀가 있는 할아버지다.


가게는 뒷 벽을 빼고 삼면이 개방되어 있다. 냉난방이 안돼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

내가 웃으며 나타나자, 깜짝 놀란다.

“아니 웬일이야? 소식도 없이?”

곁에 있던 그의 아내도 “아니 이게 얼마 만이에요? 옛날 보다 더 젊어졌어요.”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미리 연락을 못했다.

따끈한 인삼차를 내오고, 익숙한 솜씨로 사과도 깎으며 안부를 묻는다.


그는 고등학교를 본의 아니게 중퇴했다. 졸업 후 아버지 건어물 가게를 함께 할 예정이라, 공부는 그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수업 시간에 내내 엎드려 잤다. 진학을 포기한 학생들만 모아논 반에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엎드려 자든, 멍하니 앉아있든, 떠들지만 않으면 선생님도 상관하지 않았다.


이제 갓 부임한 처녀 선생님 수업시간에 사달이 났다. 여느 때처럼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뭔가 기강을 잡으려는 듯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야, 네가 학생이야? 그 태도가 뭐야? 어서 일어나지 못해.”

그는 잠에 빠져서 그대로 엎드린 채 잠자코 있었다. 선생님은 자기를 무시하는 것으로 알았는지 손에 들고 있던 출석부로 그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옆에 있던 그의 짝꿍이 대들었다.

“아니, 어차피 대학도 안 갈 건데 왜 때려요?”

선생님이 더욱 발끈해서, 그를 다시 출석부로 때리려고 했다. 이때, 그가 선생님 팔목을 잡으며, 출석부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녀의 따귀를 올려 부쳤다.

‘짝’ 소리와 함께 선생님은 휘청거렸다. 선생님은 당황해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물을 흘리며 교실을 나가버렸다. 당장 징계 위원회가 소집됐고, 둘은 모두 퇴학 처리 됐다.


이 일로 그는 한동안 방황을 했다. 그러다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가장이 된 그는 일찍 철이 들어 주 7일 아침 8시부터 밤 9시 너머까지 일했다. 언젠가 그를 따라 새벽 시장에 간 적이 있었다. 도매상인들이 모두 그를 알아봤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물건을 고르며

“장사는 물건 고르는 게 다야” 내게 이 말은 어떤 사업가의 말보다 더 귀한 가르침으로 남았다.


성철은 가끔 농담 삼아 말했다.

“아니 그놈은 선생을 때렸으니까, 당연히 잘리는 거지만, 나는 자다가 잘렸다니까. 내가 뭔 죄여?”

지금 그는 도자기 공방을 차려놓고 시간 나는 대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에게 학교는 지금 있는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준 것 이상으로 큰 의미가 없었다.


또 다른 친구 중에 대호가 그랬다. 그는 공부를 참 못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에도 떨어져서 1년을 재수했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 어머니 슬하에서 쉽지 않은 세월을 보냈다. 젊어서는 술집을 운영하다가, 미성년자를 출입시켰다는 이유로 교도소에도 다녀왔다. 동네 토박이로 지역에서 정치하는 사람 잔 심부름을 들어줬다가 형사들이 은밀히 뒤를 캐기도 했다.


그는 학교 공부는 못했지만 인생 공부는 뛰어났다. 특히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재밌고 유쾌해서 선후배들이 나이 불문하고 늘 북적였다. 조경 사업을 했는데, 마침 광명시 개발로 사업도 크게 확장됐다. 인간관계 좋고 성실하니 일감이 많이 들어왔다.


학창 시절 선생님도 가장 많이 챙기고 있다. 졸업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절이나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사과 한 상자라도 보내는 제자는 대호 밖에 없다. 공부 못해서 선생님께 주목받지 못했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며칠 전, 신정에 유 선생님 댁에 갔다 왔어. 선생님이 그래도 나를 인간 대접해 줬잖아. 공부를 되게 못해서, 저 인생이 어떻게 될까 불쌍했나 봐. 요샌 참 신기해하시지. 하하하”


그는 “사람이 도리를 모르면, 개 돼지 만도 못하지.” 이런 말을 자주 했다. 그가 강조하던 그 ‘도리’가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건 아니다. 대신 학교에선 경쟁과 승리의 절대성을 가르쳤다. 목적 달성을 위한 술수와 편법은 지혜로 탈바꿈됐다.


대호와 동네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항상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다. 아내와 딸은 뉴질랜드에서 영주권자로 살고 있다. 여름과 겨울에 두 달 정도씩 있다 온다.

“뉴질랜드 다녀왔어?”

“바빠서 못 갔어. 다음 주에 가려고. 가기 전에 참 잘 왔네. 다들 잘 있지?”


그는 사업하며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지속하며 인생철학이 굳어졌다.

“신뢰라는 게 결국 예상할 수 있어야 돼. 이게 복잡하지 않고, 간단해. 이 사람은 이럴 거라고 예측할 수 있으면 되는 거야. 그런데 도무지 예측이 안 되는 인간들이 있어요.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몰라. 걔는 뭘 해도 안돼.”


헤어지며 대호가 등을 두드리며,.

"믿어주니까 믿어주더라고. 결국 이게 내 재산이여 하하하."

숙성된 기품이 보였다.

신뢰의 깊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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