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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Nov 04. 2022

섭지코지에서 춤을 췄습니다

성취감 끝판왕 자격증 따기

  예전에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반디 앤 루니스가 크게 있을 때 그곳에서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일 읽었다. 그 책을 읽고 지금까지 실천하는 것이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 정리하기'정도? 그렇지만 그 작은 행위에서 오는 성취감은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그 두꺼운 책에 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 중 유일하게 따라 하고 있다. 성취감은 조울증이 있든, 없든 사람에게 엄청난 동기부여를 준다. 특히 자존감을 쌓아 올리는 데 경험상 정말 중요한 포인트다. 오늘은 낮은 자존감이 걱정이었던 내가 성취감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했던 (완전한 회복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자격증을 따자


미국에서 공부할 때 쓰던 교재 중 하나. 다시 저때처럼 공부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이전에도 언급했었지만 낮은 자존감이 나의 문제 중에 하나다. 나쁘지 않은 성적, 스펙, 해외 인턴십, 국제 자격증까지 있고, 면접도 나름 잘 봤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2년 동안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하나도 합격하지 못했다. 내가 먼저 취업할 거라고 믿었던 스터디 멤버들, 비슷한 시기에 취업에 성공한 대학 선배들은 "메간아, 성형을 한 번 해볼래? 관상이 취업을 못할 상인 건가?"란 말을 꺼낼 정도로 취업을 못했다. 그 후로 단기 인턴, 학원 강사를 해가며 2년 동안 7급 공무원을 준비했었다. 대학교 졸업반부터 공무원을 준비하던 그 기간 동안 주변에서 들어온 위로, 격려, 걱정은 그것이 좋은 의미였든, 나쁜 의미였든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의 나를 점점 작아지게 만들었다.


 "난 처음부터 부족한 사람이었던걸까?"

 "그렇게 노력했는데 결국 난 이제 잉여인간이 되어버렸네. 난 쓸모없는 사람이야."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다시 다운로드 한 인스타그램에는 일찍 취업한 내 또래 지인들의 호캉스 사진, 명품백 언박싱, 해외여행 사진 등등 내게 없는 빛나는 순간들이 들어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보다 열 발자국, 아니 백만 발자국은 뒤처져있다는 생각만 들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매일 아파트 난간에서 뛰어내리는 생각만 하고 살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죽을 생각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다시 한번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는 날이 왔다.  바로 공시생인 내 옆에서 함께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던 엄마가 29회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했던 것이다! 엄마는 자격증이 나오자마자 작은 부동산 사무실을 인수받아 개설등록을 했다. 하지만 20여 년 전 대우에서 타자기만 쳐 봤던 사람이 컴퓨터로 이것저것 다루는 것이 어려웠는지 개업한 지 얼마 안돼서 나를 수시로 호출했다.


 "메간아, 이거 직방에 어떻게 올리는 거냐?"

 "방 사진 찍어왔는데 컴퓨터로 옮기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유튜브에 영상은 또 어떻게 올려야 해?"


 하루에도 몇 번씩 기술적 문제 때문에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나는 엄마의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도 만나고, 부동산에 대한 지식도 조금씩 얻으며 공인 중개사 자격증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 나 공인중개사 자격증 따 볼까?"




 엄마는 반색하며 좋아하셨다. 생각보다 일이 많아서 믿을만한 직원이 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집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데 공부나 하자 그런 생각으로 인강을 결제했다. 공부에 어느 정도 재능은 있던 터라 자신 있게 32회 공인중개사 시험 동차 합격을 목표로 인강을 들었다.




 2.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해보자



 쉽지는 않았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1차: 부동산학개론, 민법 /2차: 중개사법, 공법, 공시법, 세법으로 나누어지는 데, 전공과 전혀 다른 내용들에, 생소한 용어, 생소한 법(7급에서 공부한 법들과는 또 달라서 결국 새로 다시 공부해야 했다.)이 초반에 정말 고통스러웠다. 헌법과 형소법이 공부하기 재밌었는데...


 학원강사 일에, 부동산 보조원 일에, 할머니 보살피는 일로 바빴기에 실질적인 공부는 21년 3월에 시작했다. '어차피 요약집 외우고 문제만 열나게 풀면 평균 60점 안 나오겠어?'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법 과목만 4과목에 지엽적이라 지옥의 난도를 자랑하던 7급도 2년을 공부했는 데 공인중개사 공부쯤 얼마나 힘들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3,4월 기본강의가 한 귀로 들어와서 한 귀로 그냥 흘러나왔다.  패닉이 왔다.


 5, 6월부터는 정신이 들었다. 3, 4월을 충격과 어버버로 넘겼으니 5, 6월을 알차게 써야 했다. 그날 수업한 챕터를 A4용지에 정리해서 나만의 요점 정리를 만들었다. 시간 날 때마다 볼 수 있게 반으로 접어 빈출 될 내용만 간단히 적어서 계속 봤다.


 7, 8월은 요점+문풀을 했는데 요점정리는 이제 좀 알아 들었다 싶어서 문제를 풀면 다 틀렸다...^^ 난 그때 조울증 때문에 진짜 대뇌, 해마 이런 부분이 다 썩어버려서 바보가 된 건가 생각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민법… 중개사법… 너희 나한테 왜 그래...?'

 (이상하게 모두가 쉬워하는 중개사법이 너무 어렵고 남들이 어려워하는 공법은 쉬웠다.)


공부 방해꾼 우리 집 막내. 독서대 뒤 책꽂이에 앉아서 공부를 방해한다.


 문제를 풀면서 문제풀이 책에 매일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어차피 붙을지 안 붙을지 확신도 없는 데 시험장에서 긴장이나 덜하게 현장감이나 익히러 다니자 싶어서 한 달에 한 번 학원에서 진행하는 모의고사를 보러 서울에 다녔다. 그날은 시험 보고 서울 구경하는 날로 정하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고 온 힘을 다해 시험을 본 뒤 노량진 맛집 투어를 다녀왔다. 모의고사를 보러 다녔더니 매 달 나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미세하게 성적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9, 10월은 초예민, 스트레스가 최고점을 찍었다. '내가 왜 쉬운 자격증들 놔두고 이걸 딴다고 했지? 익숙한 HSK나 토익을 한 번 더 볼걸.' 이런 후회만 했다. 이 시기엔 약도 임의로 안 먹을 때가 많았다. 이때는 졸리게 만드는 항우울제의 용량을 줄여가며 먹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그냥 안 먹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 갑자기 눈물이 나서 몰래 울면서 공부하기도 했었다. 아마 스터디 카페에서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시험날. 너무 떨려서 아메리카노, 김밥 2조각만 먹고 시험장에 갔었다. 1교시 부동산 학개론 시간에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공부한 건 하나도 안 나왔다고 작게 욕하는 걸 들어가며 시험을 봤다. 민법은 평소 힘들어했던 과목이라 너무 긴장해서 답을 10개나 밀려썼다가 막판에 수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점심에는 속이 울렁거려서 물만 한 병 마시고 2차 시험 준비를 했다. 시험 직전 포도당 캔디 하나 입에 문 채 시험을 봤는 데 2차는 정말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나 생각도 안 날 정도로 후루룩 끝나버렸다. 시험장을 나서는 데 구역질을 할 뻔했다.



3. 열심히 공부한 당신 떠나라


제주도 섭지코지

 시험이 끝난 날, 바로 제주도행 티켓을 예매했다. 가채점을 했더니 한 문제 차이로 불합격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문제제기가 된 문제가 많다는 얘기들이 많았으나 이미 불합격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만신창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지금의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제주 1주일 살기를 시작했다.


 일주일의 반은 제주에서 일하던 친구 집에 얹혀살고, 일주일의 반은 휴가 받은 사촌동생을 불러 놀러 다녔다. 사촌동생과 섭지코지에 있는 유민 미술관에 가려고 주차를 하는 데 핸드폰 카톡 알림이 어마어마 울리기 시작했다. 스터디 카페에서 같이 공인중개사를 준비하던 분들이 있는 단톡방이었다.


 [메간씨, 확인해봤어요?]

 [한 문제 이의신청 들어갔다고 했던 건 어떻게 됐어요?]

 [우린 다 불합격 나왔네요ㅠㅠ]



'이게 다 무슨 소리지?'

 날짜를 확인했다. '아, 오늘이 합격자 발표구나. 어쩐지 단톡방 밑에 큐넷 어쩌고 있더니 중개사 시험 결과가 나왔나 보네.' 매표소로 향하는 동안 단톡방에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큐넷 메시지를 확인했다. 중개사법을 워낙 많이 틀려서 불합격해도 그려려니 하고 있었기에 결과를 확인하는 마음은 평온했다.


 결과를 확인한 순간 조용한 미술관 매표소 앞, 정말 익룡처럼 비명을 질렀다.


 "야!!!! 나 합격이야!!!"

 "뭐?"

 "나 중개사 합격했어!!!"

 그 자리에서 봉산탈춤을 췄다. 옷만 특이하게 입었으면 다른 사람들이 행위예술 쇼(?) 같을 걸 한다고 구경 왔을지도 모를 정도로 기쁨의 생쑈를 했다. 기대 없이 확인한 희소식이라 기쁨이 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심신의 고생이 다 날아가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취감이 선사하는 쾌감으로  짜릿했다. 가족들한테 쭉 전화를 돌리고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최고의 날을 보냈다.






 지금 다시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라고 한다면 솔직히 자신은 없다. 내용이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동산이 딱히 관심사가 아니라서 공부하는 내용 자체가 힘들었다. 하지만 성취감을 위해 다른 자격 공부를 한다면 또 도전할 것 같다. 공인 중개사 자격증을 딴 지금도 '가벼운 중국어'를 구매해 매일 아침 하루 한 권씩 성취감을 채우고 있다. 자격증을 따고 소소하게 뭔갈 해내다 보면 "내가 쓸모없다"는 생각은 확실히 조금씩 흐려진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스스로 입힌 상처가 한 번에 바로 나을 순 없지만 조금씩 쌓은 성취감은 자신감으로 변해 나 자신을 다시 견고하게 만들어 준다.


 자존감은 나 자신을 '괜찮아, 넌 최고야.' 다독여 올릴 수도 있지만 '내가 해냄'을 느끼는 것 또한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으로 추앙할 힘을 준다. 물론 나처럼 무리해서 올리는 건 중간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니 추천하진 않는다. 괜히 약까지 끊고 울면서 공부하고, 너무 스트레스받고 그러진 말자. 나도 그 때문에 주말엔 무조건 놀러 가거나 휴식을 취했다. 안 그러면 진짜 공부하다 미쳐버릴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지금 무기력과 낮은 자존감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면 큐넷에 들어가서 제일 만만해 보이는 자격증을 한번 골라보자. 아니면 클래스 101에서, 가벼운 학습지에서, 서점에서 '이것만큼은 마스터해주지!' 할만한 한 가지를 골라보자. 장르는 아무래도 좋다. 우리는 완벽이 아닌 완료에서 오는 성취감으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시작했으니 한 번이라도 눈으로, 손으로 해냈다는 것에 집중하자. 그럼 낮은 자존감도 오늘보다 내일 더 높은 곳에서 당신을 지켜줄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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