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병원이 영업정지처분을 받은 건에 대하여
지난 9월 30일 집에서 맛있는 야식과 함께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던 한가한 오후 4시 병원으로부터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병원에서 문자를 보낸 것은 2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용은 50일 영업정지처분을 받게 되었으니 남은 약을 가지고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어째서 이런 일이.
병원 영업정지라는 것이 흔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하필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남은 약을 생각해보면 적어도 2번은 약을 타러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내 상태에 대해 또 앵무새처럼 다 털어놔야 한다니, 귀찮고 막막했다.
넷플릭스와 티빙을 오가며 영화를 고르던 나는 지도 앱을 켜서 다른 정신과를 알아봐야 했다. 초반에 내가 쓴 글을 보면 내가 사는 지역에는 정신과가 없다고 했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 지역에는 3곳의 정신과가 있다. 한 곳은 완전 시골구석에 있는, 고혈압으로 우수 평가를 받은 정신과이고, 두 곳은 시장 근처에 있는 오래된 정신과이다. 두 곳 중 한 곳은 치매환자를 전문으로 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선택지에서 지워졌고, 마지막 남은 한 곳은 완전 시장 입구에 있어서 지인을 마주칠 확률이 높고(심지어 병원 건물 3층은 단골손님의 사무실이다.) 불친절하다는 후기가 최근까지 많이 있어서 꺼려졌다. 그래서 우리 지역에 병원은 없는 셈 치고 다른 지역까지 원정을 다녔던 것이다.
병원이 영업정지되었다고 다른 병원으로 완전히 바꾸고 싶진 않았다. 나는 그 병원 특유의 편한 분위기와 선생님 진료 스타일이 좋고, 2년 동안 쌓인 내 차트가 아까워서라도 계속 다니고 싶었다. 처음엔 할머니 치매약을 타러 신경과에 들렀을 때 약봉지를 가지고 가서 신경과에서도 한 달 치만이라도 처방이 가능한지 여쭤보았다.
"아, 00시 ㅁㅁ의원이죠? 대리처방으로 50일 정지처분됐다던데."
작은 커뮤니티에선 역시 소물이 빨랐다. 이미 병원들 사이에선 내가 다니는 정신과에 대한 뉴스가 파다했다.(나중에 정신과를 찾아갔는데 거기서도 어느 병원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저희 병원에서는 처방해드릴 수 있는 약이 없네요. 정신과 가셔서 약을 받으셔야겠어요."
아쉽게도 정신과 약은 약국에서 받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따로 조제해서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경과에서는 처방이 어려웠다. 혹시라도 시장에서 친구 어머니나 엄마 친구, 지인을 마주칠까 마스크에 모자까지 쓰고 시장 입구에 있던 병원을 찾았다. 시골이라 그런지 대기실에는 노인 환자가 많았다. 간단하게 증상을 브리핑하고 (가기 전에 말할 내용을 정리해갔다) 어떤 약을 먹었을 때 무슨 부작용이 있었으니 지금 그대로 약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 병원은 후기처럼 불친절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절하지도 않았다.
우선 2주 치를 처방받았다. 무뚝뚝한 큰아빠+동네 아저씨 느낌의 의사 선생님은 이전에 다니던 의사 선생님과 상담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다. 통지에 가까운 처방과 무표정한 표정이 대화할 때 약간 긴장하게 만들었다. 대기실도 계단에서 훤히 보이는 통유리라 대기시간 내내 상당히 불안했다.
'음, 이곳을 계속 다니고 싶진 않은데… 40일만 버티면 되는데 2주 치로 그냥 버틸까?'
그런 생각이 문제였다. 처방약을 아껴먹겠다고 하루 건너 한번, 이틀 건너 한번, 술 먹는다고 패스, 여행 가니까 패스, 2주 치를 3에 걸쳐 먹었다. 약이 다 떨어지고 나서 일이 바쁘기도 했고 그 시장통에 또 가고 싶지 않아서 5일 동안 약을 받으러 가지 않고 버텼다.
처음 아루 이틀은 좋았다. 약 챙겨 먹으면서 느끼는 불편함, 불쾌함도 없고, 별로 달라진 느낌이 안 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지옥이었다. 1형이든 2형이든 조울증 약은 꾸준히 먹는 게 핵심인데 그걸 무너뜨리고 심지어 맘대로 5일 단약이라니. 감정 기복은 -100에서 +100까지 피로감이 느껴질 정도로 하루에도 수십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작은 소음에도 예민해져서 일을 할 수가 없고 예전처럼 기억력은 엉망이 되었다.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에 두통이 아침부터 밤까지 심했고, 속이 울렁거려서 샐러드나 상큼한 과일, 아메리카노 외에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주말에는 가족들이 밭일하면서 새참으로 먹은 라면 냄새에 구토가 날 정도였다.
약을 안 먹고도 버틸 수 있다고 자부한 나 자신이 미련했다. 월요일 아침 병원 개원시간에 맞춰 시장 입구의 병원을 찾았다. 견디기가 힘들었다.
"일주일이나 안 왔네? 괜찮았을 리가 없는데? 어땠어요?"
"맞아요.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서 머리도 아프고 몸이 너무 지쳐요. 그냥 다 힘들어요."
솔직하게 약을 안 먹었다 말했다가 아침 9시부터 호되게 혼이 났다. "완치 안 할 거야?!"하고 꾸중도 주셨다. 아마 이런 환자를 많이 보셔서 답답하셨던 모양이다. 약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대기실. 할머니, 할마 버지 대여섯 분이 순서를 기다리고 계셨다. 노인만 우글우글 오는 병원에 웬 젊은이가 대기실에 앉아있으니 신기하신지 몇몇 노인 분들은 나를 계속 빤히 쳐다보셨다. 정말 약을 기다리는 5분 동안 그 시선이 얼마나 부담스럽던지.
'원래 다니던 병원 영업정지 풀리면 여기 오지 말아야지.'
한 봉지에 7알, 총 3주 분의 약. 약봉투가 묵직했다. 3주간 나의 정신상태를 책임질 동아줄을 다시 받아왔다. 다니던 병원이 영업정지되었다는 이유로 약에서 조금 자유로워도 괜찮을 거란 안일한 생각을 상당히 후회하고 있다. 50일간의 영업정지, 5일간의 지옥. 이제 병원 영업정지가 해제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기강 확실히 잡고 약 잘 먹고 멘털 관리 열심히 하면서 의사 선생님 만날 준비를 해야겠다. 다른 정신과 환자분들도 약 꼬박꼬박 잘 챙겨 드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