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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Oct 21. 2022

사실 고민 많이 하고 말한 거야

조울증 고백하기

사실 고민 많이 하고 말한 거야

  가까운 사람에게 ‘나 조울증이래.’라는 말을 해본다고 상상해 봤는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의 표정을, 반응을 상상해 본 적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상상하는 반응도 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누군가에게 "나 조울증이 있어."라고 말했을 때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을 보여 당신을 당황하게, 상처받게 할 수도 있다. 


 그 부분에 있어서 나는 아주 신중하게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 2년 동안 치료를 진행해오면서 다른 이들로부터 배려를 받아 편하고 싶어서 조울증 커밍아웃(?)을 할까도 망설였다. 그렇지만 아직은 잘 함구하며 버티고 있기에 이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늘은 내가 조울증과 상당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음을 가까운 사람에게 고백하던 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거창하게 말하지만 사실 2.5명에게만 이야기했기 때문에 다양한 빅데이터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0.5는 조울증이라는 것을 정확히 말한 건 아니라서 1로 카운트하지 않았다.)          



 


<친구 A>     

 제일 처음 조울증을 털어놨던 사람은 의외로 부모님이 아닌 친구 A였다. 고등학교 때 친구 과외수업에 따라갔다가 알게 되어서 지금까지 드문드문 연락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퇴직하고 고향에서 잠깐 쉬게 된 시기가 있었다. 나와 A는 고향에 남은 친구가 거의 없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났었다.  주된 관심사에 대한 대화거리가 떨어지자 서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병원 초진을 가기 전 내 상황에 대해 상담했었다. 그때 그 친구가 병원에 가보기를 권유했었다. 


 “지금 네 상황에서 제정신인 게 말이 되니? 나 같아도 우울증 오겠다.”


 여기엔 쓸 수 없지만 내가 고향에 머물 수밖에 없던 상황으로 인해 나는 속이 많이 곪아 있던 상태였다. 그날의 A의 권유와 응원으로 병원을 찾았다.  결과도 그 친구에게 가장 먼저 말했고, 친구는 위로의 공감을 건넸다. 


 그 후로는 더더욱 자주 연락을 해왔고 우울할 틈이 있으면 안 된다며 날 집에서 끄집어내서 밖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차로 30분 이상 드라이브해야 갈 수 있는 카페로, 관광지로 계속 돌아다녔다.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친구에게 고마웠고, 좀 더 그 친구에게 의지하게 되면서 약의 부작용에 대해 의논하고, 심리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의존적으로 변해갔던 것 같다. 친구도 그런 상황을 나쁘지 않게 여겼다. 퇴사 후 낮에 실컷 놀러 다닐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좋다고 했다.    

   



 매번 놀러 다니는 게 즐겁지만은 않았다. 종종 다투기도 했다. 무기력하고 지치고 부정적인 나와 항상 긍정적이고 활동적이었던 A의 성격차이 때문이었다. 내향적인 나는 때때로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밖으로 나도는 것이 좋긴 해도 피로가 누적되니 긍정적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거의 누군가의 말에 공감을 많이 해주는 편임에도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오늘 진짜 날씨 좋다. 따뜻해서 돌아다니기 좋겠어.”라고 A가 말하면 , “미세먼지 많아서 너무 뿌옇지 않아? 실내에서 놀자. 그냥.”라고 내가 초를 치곤 했다.

      

 집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너무 피로하고 자극적이었으므로 주말에 누굴 만나서 드라이브를 간다는 게 더 이상 흥분되는 일은 아니었다.      


 “넌 왜 맨날 부정적이야? 나왔으면 좀 그냥 좋게 생각하면 좋잖아.”     


 결국 봄에 둘이서 떠났던 여행 마지막 날 싸우고 말았다. 돌아와서는 며칠 동안 서로 연락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데이는 조울증이 있다는 것을 유일하게 알게 된 친구에게 무의식적으로 의존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나눠준 탓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처럼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그 친구도 나도 너무 가깝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중이다. 나의 병을 안다고 해서 너무 많이 보여주면 상대방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그 친구도 본인의 노력만으로 병을 고쳐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친구 B>

 B는 대학 동기이다. 학과 특성상 여자가 적어 여학우끼리 아주 끈끈했다. 지금도 여자 동기들의 소식을 자주 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B는 점심시간이나 퇴근 이후에 통화를 많이 하는 친구인데 주로 점심시간에 전화하면 직장 험담이 주된 주제가 된다. 그날은 자신의 직업과 직장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는 B의 얘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진짜 요즘엔 삶이 즐겁지가 않아. 의욕도 없고, 그냥 무기력해. 아무것도 하기 싫어. 밥 먹는 것도 귀찮아서 어젠 밥도 안 먹으려고 했다니까.”  B가 말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것이 평소와 다르게 우울한 목소리였다. B의 그런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얘기를 듣고 있자니 초반의 내 증상들과 비슷한 면도 종종 있었다. ‘얘 진짜 우울증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 힘들면 시간 날 때 병원을 가보는 건 어때?” 내가 말했다.    


 “그 정도일까? 내가?”     


 “그건 가서 검사하면 객관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너처럼 그런 마음이 들어서 병원 가서 검사했거든. 감정 기복도 커지고 특히 불안이 크다더라고. 불안장애 알지? 지금 그래서 약을 먹고 있어.”     


 친구는 2, 3초 정도 말이 없었다. 그 짧은 침묵의 순간 동안 ‘아, 망했다. 괜히 이런 말 해서 좋은 친구 하나 잃는 건가?’라는 생각과 나를 자책하는 비속어가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그래? 나는 네가 직장인이 아니라서 편하게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응, 좀 그랬어.”


 “… 병원 가는 거 비싸? MBTI만 주야장천 하면서 내 성격만 탓할 게 아니라 진짜 검사를 한번 받는 것도 괜찮겠네.”     

 

 그게 다였다. 그 친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B가 나와 거리를 둘 것이라는 기우와 달리 B는 평소와 같이 대했다. 적극적인 응원과 격려도, 지나친 관심이나 편견에 싸인 조언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하게 배려해줄 뿐이었다. 함께 술자리에 참석하거나 여행할 때 약 때문에 술을 먹지 못하는 것을 대충 이야기해도 술 대신 음료를 따라 줬고, 갑자기 불안을 느껴도 같이 시간을 가지면서 기다려줬다. 마음이 편했다. 그 조용한 배려가 “머릿속이 어지러운 병이 생겼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취향도 정반대에 멀리 떨어져서 일 년에 몇 번 못 보는 친구지만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배려에 감동하게 만드는 친구다. 


 만약 이런 친구가 있다면 여러분도 한번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가족에게도 잘 전하지 못하는 말이 정신적인 장애나 질병에 관한 것인데 오히려 친구는 편하게 들어주기도 한다. 용기를 내어보자. 친구는 당신을 토닥여줄 따뜻한 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엄마>     


 내가 가장 오랫동안 알고 있고, 가장 많이 의지했던 사람이자 현재 함께 사는 사람. 그만큼 엄마에게 조울증을 털어놓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가장 고민하고 망설이다 제일 마지막으로 엄마한테 나의 병을 고백했다.


 먼저 엄마의 삶의 이력을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엄마는 20대부터 장남인 큰삼촌의 대학 등록금을 벌고, 몸이 약한 이모, 막내 삼촌의 병원비를 충당했으며 결혼 후에는  IMF를 온몸으로 겪은, 현재는 15년 차 싱글맘으로 정말 이 악물고 살아온 사람들 쪽에 속한다. 


 그래서 엄마는 ‘하면 된다, 정신만 차리면 못할 것은 없다.’ 등의 인생관으로 산다. 약간 '힘들게 살아온 나도 살고 있잖아.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마인드. 


 항상 정신력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많은 풍파에도 정신줄을 놓지 않고 나름 자수성가해서 사는 당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실제로 나도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랐기에 존경하고 있다. 정말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대단한 여성이다. 솜씨만 된다면 내가 대신 엄마 인생에 대해 에세이를 써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더 말하기 망설여졌다. 그런 엄마의 강인한 정신력을 본받아 많은 성취를 이룬 딸이, 미국까지 혈혈단신 떠나서 1년 만에 인턴십 수료증과 국제 자격증을 손에 쥐고 돌아왔던 독립심 강한 딸이 조울증 따위에 걸려버리다니. 부정하며 정신력에 대한 연설을 할 것이 눈앞에 선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았았지만 상상만으로도 서운했다.      


 디데이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때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살짝 나른해진 저녁, 할머니는 아직 추워서 발이 시리다고 방으로 들어가시고 둘만 주방에 남아 태블릿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엄마, 내가 뭐 말할 게 있는데, 요즘 병원을 다니고 있거든….”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어디 아파?” 

     

 “어… 그게, 내가 조울증이래. 우울증에 약간 경조증 있는 건데, 막 입원할 정도는 아냐. 그리고 내가 막 운전하기 무서워서 안 한다고 하고 그랬잖아. 그게 다 내가 불안이 높아서 그랬던 거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점심에 시뮬레이션했을 땐 ‘엄마, 나 조울증이야.’에서 말이 끝났다. 

 간단하네! 이따가도 이렇게 쿨하게 얘기해야지!


 그런데 막상 엄마 얼굴을 보면서 말하려니까 뒤로 군더더기가 막 붙어 다녔다. 조금이라도 더 이해받고 싶어서 ‘조울증’으라는 단어에 살을 붙이고 붙였다. 엄마는 내 말이 끝나고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더니 짧게 얘기했다.      


 “그건 그냥 감정 기복이지. 정신병이 아니라. 그걸로 병원을 갔다고?”   

  

 서운했다. 눈물이 핑 돌아서 눈에 힘을 줬다.     


 내 입장에서는 진짜 힘들어서, 병원까지 다녀왔는데 그저 감정 기복이라며 유난 떨지 말라는 듯 대하는 엄마의 태도에 피가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확 쏟아져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발아래로 떨어진 피를 끌어올리려는 듯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뛰는 심장은 눈가에 눈물을 핑 돌게 만들었다. 눈물이 톡 떨어지기 전에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아, 괜히 말했어. 엄마한테 이런 얘길 한 내가 잘못이지. 막 배려해달라는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감정 기복은 내가 알아서 컨트롤할 테니까. 괜히 삼촌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소문이나 내지 마.”     


 난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이 닫히고 방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자 실망감에, 섭섭함에, 눈물이 펑펑 흘렀다. 아무 소리도 방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베개에 얼굴을 세 개 파묻고 실컷 울었다. 나중엔 너무 울어서 나중엔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 후 엄마의 표정이 어땠을지, 어떤 행동을 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날의 일을 의사 선생님께 말하고 엄마와 동반 상담을 권했지만 엄마는 한 번도 오신 적이 없었다. (지금은 나도 혼자 가는 게 좋아서 그냥 혼자서만 상담하겠다고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예전에 엄마 몰래 자살 시도한 이력이 있는 데 엄마가 오시면 그러한 기록을 원칙적으로 알려야 해서 차라리 안 오시는 게 낫다. )     


 지금도 엄마는 내가 약을 타러 다니고, 힘들어하면서 병에 대해 이야기하면 외면할 때도 있다. 2년째 딸이 가지고 있는 조울증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신다.(찾아보고도 티를 안내는 걸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때 이후로 엄마가 조금씩 변하고 있기는 하다.  시간이 없어서 약을 못 타러 가면 사무실은 당신이 봐줄 테니 다녀오라고 시간을 내주시고,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흘러서 몰래 눈물을 훔치면 아는 척했다가 혹여 딸이 불편해할까 못 본 척 지나가 주시기도 한다.           


 청년 자살률이나 청년들의 우울증 증가에 쉽게만 살아봐서 멘털이 약하다는 말도 하지 않으신다. 이제 그런 뉴스를 보면 열을 내며 국가가 청년들을 망친다며 화를 내시고 가여워하신다. 다른 "꼰대"어른들의 "요즘 젊은것들의 정신상태"에 대한 욕에도 마구 반박해주신다. 가끔은 그리고 내가 약을 잘 챙겨 먹는지, 약 부작용이 심해 힘들어하면 도움이 될만한 약이 없는지 구급상자를 뒤적이신다.      


 “오늘 의사 선생님이랑 상담하는데 무슨 얘기를 했냐면….” 같은 이야기를 해도 지금은 예전만큼 저항이 세지 않다. 가끔은 경청해주시고, 대화가 이어진다.  어차피 내 딸과 함께 안고 가야 할 병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주는 것이 부모인가 보다. 지금도 이런 엄마와 여차저차, 우당탕탕 잘 지내고 있다. 









        

 정신과 코드인 F코드를 진단받은 환자들은  자신의 병을 고백해야 하는 시간을 한 번쯤 마주하게 된다.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치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말하는 것일 것이다. 최악의 경우 애인에게 파혼을, 친구에게 절교를, 부모에게 외면을 받을 각오를 하고 하는 이야기 일수도 있다. 그들이 몰라서 자신의 진단명에 대해 얘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알아야 자신의 병을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 알려주기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지치고 힘들어 버팀목이 필요할 수도, 격려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혹시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 누군가 “나 정신과 다녀.” 등의 고백을 할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길 바란다. 앞서 3명의 일화만 봐도 반응은 제각각이다. 도움을 주려고 할 수도, 의연할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원하던 위로와 격려를 받는 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말로 답한다면 그 사람은 거기까지인 거다. 부정적 대화하 상처받지 말고 흘려버려라. 때가 되면 자연스레 당신을 받아들일 것이고 아니라면 굳이 나쁜 기억을 되감기하며 스트레스받지 말자. 아직 모두가 정신과에 긍정적일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


 만약 주변 사람에서 '나 정신과 다녀.'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있다면 정신과 질병이 있는 사람을 '정신병자'라는 어휘에 담긴 부정적 느낌으로 바라보지 말아줬으면 한다. 르포 방송에 나오는 '위기의 000' 식의 정신질환자가 아니어도 생각보다 F코드 소유자는 세상에 많이 살고 있으며 의외로 멀쩡히 살아가고 있다.    

 

 아토피 때문에 피부과에 다니는, 만성 위염으로 고통받으며 내과에 다니는, 환절기면 항상 결막염으로 눈이 청혈 되어 안과에 다니는 친구를 대하 듯, 평범하게 대해준다면 그들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친구가, 애인이, 가족이 정신과에 다닌다고 해서 그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는 여전히 당신의 친구이고, 애인이고,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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