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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Oct 19. 2022

나는 내가 좋아진 줄 알았지

경조증에 대하여

 정신과 진료를 받다 보면 하나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도 어느 순간 확 나아졌다고 생각되는 때가 온다. 그래서 스스로 병원 가기를 멈추거나 약 복용을 멈추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도 하는 등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정말 괜찮아졌다고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을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조울증 진단을 받은 겨울에서 또 사계절을 돌아 겨울이 왔을 때의 일이다. 드디어 몸에 무리가 없는 약을 찾아서 낮에도 덜 졸리고, 메슥거림이 잠잠해졌을 때였다. 불안해지면 먹던 필요 시약도 매일 1 봉지 복용하다 일주일에 1 봉지 먹을까 말까 했다.  우울하고 공허했던 기분은 활기를 되찾고 감정표현도 비교적 잘했다. 약 먹는 게 귀찮으면 하루 정도는 건너뛰는 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기 전 약을 먹고 나서 침대에 누울 때면 요즘 상태가 괜찮았으니까 다음번 진료 때에는 약을 줄이거나 아니면 완쾌 진단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병원 가기 일주일 전부터 기분이 좋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경조증의 시작일 줄은.



내가 조울증을 극복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잠이 확 줄었다. 나의 울증 시기의 가장 큰 문제는 오버 슬립(over sleep, 정확한 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사 선생님이 차트에 써가며 설명해주신 기억이 난다.)이었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 8시간 내외로 자는 것이 정상적이라면 나는 10~12시간, 최대 많게는 20시간도 잠을 잤다. 그렇게 잠을 자지 않으면 몸이 아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새벽 2시에 자도 새벽 5시면 눈이 번쩍 띄었다.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고, 에너지가 넘쳐 아침에 러닝도 했다. 나는 드디어 오버 슬립을 극복하고 미라클 모닝이 가능한 사람이 된 줄 알고 기뻤다.


 그렇게 스스로 좋아지고 있다고 자만한 순간부터 나는 쇼핑을 시작했다. 정말, 많이 했다. 울증 기간엔 모든 게 허무하고 무기력하니까 돈 쓸 의지도 없어서 쇼핑도 잘하지 않는 편이었는 데 울증 시기를 벗어났을 때는 핸드폰으로 사고, 사무실 pc로 사고, 밖에 나갔다가도 뭔가 보면 그냥 샀다.  뭘 샀는지 잘 모를 정도였다는 것이다. 택배 아저씨한테서 오늘 택배가 도착한다고 문자는 오는 데 너무 많이 사서 내가 뭘 샀나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집에 가서 상자를 뜯어보고야 '아~ 저번에 산 옷이구나.', '아, 고양이 장난감 샀었지.' 하며 기억을 되돌려보는 식이었다. 열흘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적금, 예금 외에는 다 써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지역에 백화점이나 프리미엄 아웃렛이 없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조증은 매스컴에서처럼 마냥 흥분해서 벌거벗고 뛰어다니는 병이 아니다. 조증, 경조증 환자들이 공감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표현'극극극 예민충'으로 변하는 병이다. 소리에 한없이 민감해지며(다른 사람들이 못 듣는 소리도 잘 들어서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 평소보다 감정 기복의 폭이 훨씬 커져서 평소 5만큼 좋았다면 10만큼 좋아하고, 5만큼 부정적이면 10만큼 부정적으로 변한다. 그만큼 충동성도 커지고 말이다. 그래서 조울증 환자의 자살은 주로 조증 시기에 나타난다고도 한다.  


경조증도 마찬가지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부분이 존재한다.


 나도 그랬다. 그날은 엄마와 일적인 문제로 다툰 날이었다. 엄마와 나는 직업이 같은 데 60년대생인 엄마와 MZ세대인 나는 직업관과 일하는 방식이 많이 달랐다. 그날은 내가 농담으로 휴식의 중요성, 자율출근 도입 같은 말을 했는데 엄마는 MZ에게 부족한 열정과 끈기에 대해 진지한 불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 같으면 "진짜 너무해. 꼰대 엄마!"이러고 넘어갔을 일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엄마의 말이 뒤틀어져 나에게 날아왔다. 아프진 않았지만 가슴이 끓듯이 화가 났다. '내가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놀 궁리만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나의 열정이 재단당해야 하는 걸까' 등의 꼬리를 무는 부정적 사고로 인해 분노가 치밀었다. 그날 저녁 사춘기 이후로 십몇 년 만에 엄마한테 큰소리친 것 같다.

 

 그리고도 가슴이 답답해서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이직하려고 잠깐 쉬고 있는 사촌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춘천에 가자고. 그리고 이틀인가 사흘 뒤에 정말 춘천엘 갔다.(바로 떠나고 싶었는데 숙소를 못 잡아서 일정이 밀렸다. 그때까지 근처 드라이브로 속을 달래고 있었다.) 평소엔 약을 먹어야 해서 입에 대지 않던 술도 마셨고, 정말 몸이 부서져라 돌아다녔다.

 웃긴 건 춘천에서 다시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진로를 변경해서 병원을 갔다. 약이 아직 남았는데도 어차피 고속도로 탄 김에 다음 달 약을 받아가자는 생각으로, 요즘 나에게 있었던 일을 전부 의사 선생님께 말해주고 싶은 열망으로 말이다.


 무기력하고 항상 위축되어 진료를 받던 나는 그날은 여행으로 인해 약간 흥분하고 들뜬 채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께는 그간 있었던 일을 상기된 채 말했다. 마음속으로 '선생님도 내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시겠지?' 하며 말이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차트에 바쁘게 메모를 하셨다. 그건 별로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춘천 갔다가 바로 병원 왔어요!"

 나는 눈을 반짝이며 에너제틱하게 보낸 나날을 이야기했다.


 "메간 씨가 말씀하신 걸 들어보니 충동적으로 한 일들이 많이 있네요. 어머니랑 싸우시기도 하고. 제가 보기엔 좋아졌다기보다는 경조증 시기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상태가 악화되었다는 말은 아니에요. 우리 약을 조금만 바꿔보죠."


 머리가 띵했다. 사실 나는 조증이라는 병을 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조증 환자를 연기한 곽동연 배우는 다소 코믹하게 나왔지만 실제 1형 조울증일 앓던 지인의 조증 증상을 실제로 봤을 때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은 분명 '경'조증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경조증 시기의 환자답게 '조증'에 포커스를 맞춰 오버하기 시작했다.

 

 "그럼 저도 환청, 환시를 보는 조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나요?"

 "경조증 기간이 자주 올 수도 있나요?"

 "이러다 입원도 하는 건 아니죠?"


 다행인 건 우리 의사 선생님은 늘 침착하게 답을 주신다는 것이었다. 나의 불안 섞인 걱정에 차분히 답을 주셨다. 그리고 바뀌는 약들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병원을 나와 차 문을 여니 조수석에 쌓인 기념품과 감자 빵 꾸러미가 보였다. 경조증의 산물이었다. 운전석에 올라타면서 짐 더미 사이에 약봉지를 낑겨 넣었다.


"감자빵 먹고 약이나 열심히 먹어야겠다."



춘천의 한 독립서점에서 구매하 책. 작가의 우울에 공감하며 재밌게 읽었다.

 

 이전에도 말했듯 2형 조울증 환자의 경조증은 드물게 경험하기도 하고 미미하게 지나가기도 한다. 나도 지금 생각해보면 경조증의 대표적 증상인 충동성과 예민한 청각, 큰 폭의 감정 기복을 경험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무사히 잘 넘어간 것 같다.


 이때의 교훈은 완전히 나았다는 진단을 받기 전까지 스스로 절대 자신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신과 약은 도중에 자판(自辦)해서 단약 해버리면 절대 안 된다. 그랬다가 병이 더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울증 기간이 긴 조울증을 앓고 있다면 나와 같은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꼭 병원을 찾길 바란다. 정말 좋아진 것일 수도 있으니 의사 선생님께 희망을 가지고 상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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