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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Oct 27. 2022

바보가 될까 봐  무서웠어

약 먹는 게 쉽지 않아


 국가정신건강정보 포털에 따르면 대한민국 인구 10만 명 당 정신질환 치료 수진자 수 4,486명.

2020년 한 해동안  정신질환 코드인 F코드를 진단받는 환자만 21만 명이 넘는다. 외래, 입원 등이 중복인 통계라고 해도 한해에만 정신과 환자가 21만 명이 병원을 오갔다는 의미이다. 뉴스에서는 코로나 이후 우울증 환자가 증가했다고 하니 아마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F코드를 가지고 처방약을 받아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왜, 요즘 많은 노래 가사들도 공황장애, 우울증 등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고백을 많이 하고 있지 않은가.


정신과 환자이거나 병원에 가기를 망설이는 사람이거나, 정신과 질병과 전혀 관계없는 건강한 사람이거나 아직도 정신과 약에 대해 편견 또는 걱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주변이나 우울증·조울증·불안장애 환자들 커뮤니티에만 봐도 초진 이후 일일이 약 이름을 검색해서 "000 약 먹고 있는 데 이거 괜찮은 건가요?"같은 질문이 올라오곤 한다. 의사도 아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괜히 불안만 커질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정신과 약에 대해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궁금해하던 것들에 대해 소소하게 이야기해볼까 한다. 물론 나는 정신과 전문의도, 약사와 같은 전문가가 아니다. 앞으로의 내용은 나의 경험이나 정신과 진료 때 상담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쓸 예정이니 모든 정신과 환자 케이스에 일반화하지 않고 읽어주길 바란다.







1. 약을 먹고 바보가 될까 봐 무서웠어


 간혹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정신과에 입원한 환자나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사람을 멍청이(?)처럼 표현한다. 멍하게 입을 벌린 채 창밖만 내다본다든지, 마약을 한 사람처럼 해롱 해롱 하고 있다든지, 시도 때도 없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알약을 털어 넣는 모습들 말이다.  물론 병증과 약의 강도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정신과 약은 그렇지 않다. (물론 폐쇄병동이나 중증 질환자인 경우 강한 안정제를 쓰기도 할 것이다.)

 

 나도 이전에 말했든 정신과 약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있었다. 조울증 치료에 쓰이는 리튬이라던가 상당히 비비드 한 코팅제 색 때문에 먹으면 안 될 것처럼 생긴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들이 그랬다. 그때 조울증을 검색하다 찾은 커뮤니티에서도 다양한 항우울제 이름이 언급되면서 "ㅁㅁㅁ때문에 졸려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ㅇㅇㅇ복용하고 멍한 시간이 많아지는 게 예전보다 더 바보가 되는 것 같아요."라는 식의 고민이 올라와 있었다.

(약의 이름은 다른 분들께 약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까 봐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일과시간에 졸려서 힘들었던 것은 1년 반 내내 그랬고, 멍하게 있는 시간도 치료 시작 후 6개월 정도부터 그랬다.  전자의 경우는 졸린 것이 운전하기 힘들 정도로 집중력을 흐트러 놓는다면, 또는 커피를 계속 마시게 만든다면(카페인이 불안을 높여서 결국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의사와 상의해서 약을 바꾸면 된다.  현재는 상담을 통해 졸리지 않은 항불안제로 변경했다.(지금 약도 당뇨환자급의 입마름이 있지만 물을 잘 마시니 졸린 것보단 나아서 그냥 유지 중이다.)

 

후자의 경우는 조금은 기뻐해도 좋다. 불안장애나 조울증에게는 좀 더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니까 말이다. 나도 치료 6개월쯤부터 일하다가 하가도 멍-, 집에서도 멍- 하길래 '우울증 약을 장기 복용하면 생각을 잘 못하는 바보가 된다더니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절망하며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갔던 기억이 있다.


 "그동안 요즘 어떤 변화가 있었어요?"

 "제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점점 더 바보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바보가 된다? 어떤 의미일까요?"

 "음… 저는 항상 뭔가를 생각해야 했거든요? 생각이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데 요즘엔 시도 때도 없이 멍하게 있어요. 멀리 바라보면서 잠깐씩 행동도 멈추고 생각도 멈추게 되는데 그때마다 우울증 약 때문에 지능이 떨어지나 싶어요. 그런 얘기 있잖아요. 정신과 약 오래 먹으면 지능이 떨어진다, 생각이 없어진다. 그런 거."


 나는 그때 이 증상이 심각한 병증인 거면 병원에 입원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얘기하는 동안 선생님이 차트에 쉴 새 없이 메모를 하고 계셨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경청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정말 심각한 문제인 줄 알았다.  


 몇 초 후 차트에 메모를 마치신 선생님은 마스크 위로 눈웃음을 지으며 말해주셨다.


"축하할 일이네요. 드디어 좋아지고 있어요."


 뜻밖의 답변에 현실에서 "엥?"이라고 되물었다. 정말 철없어 보이는 목소리로 말이다.


 "사람의 뇌는 24시간 일할 수 없어요. 뇌가 하는 일은 많지만 그중에 생각하는 일은 뇌에게 무리를 줄 수 있어요. 그래서 가끔 쉬는 시간을 줘야 해요. 그게 바로 "멍 때리는 일이에요."  보통 메간 씨 같은 불안장애, 조울증 환자분들은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호전되는 시간이 늦죠. 그런데 멍 때리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드디어 뇌에게도 쉼을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거예요. 좋은 징조예요."


 안심이 됐다. 약을 먹어서 바보가 된 게 아니라 과부하가 일상이던 뇌가 정상적인 시스템으로 변한 것뿐이었다. 나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낯설었던 것뿐이고 말이다.


 여러 번 약들을 변경해보면서 '100% 부작용이 없는 정신과 약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 경험상에는 거의 없었다. 같이 들어있는 위 보호제 정도가 부작용이 없던 것 같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면 비전문가 말고 의사와 상의하라. 증상을 자세하게 말할수록 좋다. 대체할 약은 얼마든지 있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나는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땄다. 정신과 약을 장기 복용한다고 해서 바보가 되진 않더라.









2. 정신과 약 먹는 데 술 먹어도 되나요?




'우울증 약과 술을 섞어 마시면 향정신성 약물(?)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정신과 약과 술을 마신 후 눈떠보니 집이 범죄현장 같았다.'


TV 토크쇼나 뉴스 사회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야기 중 하나.


"우울증 약을 술과 함께 먹었더니 제정신이 온전하지 않았어요."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있는가?


그건 약바약인 것 같다. 너무 근본적인 이야기지만 이것도 술 먹기 전에 의사와 상의하자.


왜냐하면 제1조울증을 앓는 지인은 약을 먹고 난 후든, 전이든 술을 마셔도 된다.

하지만 우울증 약만 복용하는 지인은 절대 음주 금지이다.

또 제2조울증인 나는 약을 먹기 전이면 음주가 가능하지만 약 복용 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그 후에 술을 마시면 위에서 말한 거처럼 마약 한 사람과 같은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렇게 복용하는 약이 다르듯 술에 대한 취급도 다를 수 있다.


병원에 다니고 3개월 동안은 무조건 정신과 약엔 술은 절대 금지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정신없이 일하고 집에 왔을 때 씻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

비 오는 날 돼지고기 팍팍 넣고 신김치로 반죽한 김치전에 걸쭉한 막걸리 한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막창집에서 마시는 소주 한잔,

그 치명적인 유혹은 언제까지 참을 수는 없었다.


속없어 보여도 물어보고 싶었다.


"선생님, 근데요… 제가 혹시 술을… 마셔도 될까요? 알코올 중독 아니고 가끔 한잔씩!"

"네. 마셔도 돼요. 대신 약 드시기 최소 2시간 전까지만 드시고, 약 먹은 뒤로는 절대 드시면 안 돼요. 그 후로는 마약 한 것처럼 되니까 상당히 위험해요."


속으로 '아싸!'를 외쳤다.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4캔에 만 원하는 맥주를 사다 냉장고 문짝에 진열할 생각에 행복했었다.


단, 주의 사항이 있다면 약과 술 모두 간에서 해독작용을 해야 한다. 그러니 둘 다 차체 내에 들어가면 간의 부담은 당연히 커지게 된다. 술을 마실 거라면 몸에, 특히 간에도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 자주 마시진 말아야 한다.






3. 전 약이 아니라 상담이 하고 싶은데요?


 정신과 초진 전, 나는 정신병원에 대해 약간의 환상이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편한 의자에 기대서 오랫동안 상담을 하고, 금쪽 상담소처럼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사 선생님이 무르팍 도사처럼 무릎이 닿기도 전에 고민을 팍팍 해결해 줄 것이라는 그런 환상 말이다.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실제 병원에 가보면 그냥 내과진료실과 별 차이가 없다. 책상 하나, 의사 선생님, 그 사이에 책상, 그리고 의자 하나. 그게 다 였다.


 우선 처음 병원에 왔다는 것은 감정조절이 힘들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 때 오게 될 것이다. 나도 그랬다. "어떻게 오셨어요?"라는 첫 질문에도 얘기하다 혼자 울컥해서 바로 앞에 놓인 갑 티슈에서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았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초반에 오시는 분들은 거의 그러세요."라고 덤덤하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한 한 달을 진료실 가서 매번 울고 나왔다. 별 얘기도 안 하는 데 울었다.

 

선생님 얼굴 보면 울고,

안부만 물어도 울고,

그냥도 울고….


그래서 약을 쓴다. 우선 대화가 가능해야 상담을 시작하지 않겠는가!

맨날 만나면 울기 바쁘니 상담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우선 약으로 감정과잉 상태를 진정시켜야 상담도 되는 것이다.


내면에 담긴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눈물부터 난다?

약을 먼저 먹자. 그것이 상담의 첫걸음이다.


  지방에 있어서 금쪽 상담소 또는 드라마 같이 오직 상담만 해서 고치는 케이스는 잘 못 본 것 같다. 요즘은 보통 약물치료로도 효과가 좋으니 굳이 필요성도 못 느끼고 말이다. 그리고 병원 진료실에서 하는 상담은 방송처럼 과거의 트라우마나 내면의 상처부터 끄집어내는 상담이 아니다. 경험상 현재에 집중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는 편인 것 같다. 오히려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내서 상기시켜주지 않는 느낌? 난 가끔 내가 상처받은 과거를 꺼내고 싶어서 아쉬울 때도 있지만 나쁜 기억을 굳이 소환하지 않아도 되니 나쁘진 않다.


이 또한 의사 선생님께 말하면 상담이 가능하다. 나는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웬만큼 얘기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옛날에 이런 일로 힘들었는데 지금도 영향이 있는 걸까요?"


등등 약을 먹고 감정과잉상태에서 벗어난 후로는 15분의 진료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쓰고 나온다.


만약 병원의 이런 상담이 성에 안차거나 가슴에 담아둔 것이 너무 많아서 상담을 부수로 꼭 해야 한다면 따로 상담센터를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비용은 꽤 있지만 환자가 너무 많아서 길어야 15분~20분 정도만 진료실에 머무를 수 있는 정신과와 달리 상담센터는 과거, 현재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돈만 내면 비교적 오래 상담이 가능하니 말이다. 단, 상담을 다니는 데 그곳에 가는 게 숙제처럼 느껴진다면 그만두는 편이 좋다.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병을 악화시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주저리주저리 이야기 했지만 위에서 말한 모든  내용의 주제는 한결같다.


의사와 먼저 상의할 것.

 감정의 폭이 다른 사람보다 큰 조울증 환자의 기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때때로는 충동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말에 휘둘려서 괜한 불안에 휩싸이거나, 쓸데없는 걱정으로 전전긍긍하기 쉽다. 그래도 비전문가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자. 그리고 불안함에 검색해 본 약들의 부작용에 지레 겁먹지 말자. 게보린도 부작용 검색하면 심근 괴사가 나온다. 모든 내용은 의사에게 상담하고, 만약 바로 병원에 갈 수 없다면 전화로 "약을 먹고 이런 증상 때문에 너무 불편한데 혹시 어떤 약 빼고 먹어도 될까요?"라고 물어봐도 된다. 데스크에서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다 다시 전화를 주기도 한다.  (안 그런 병원도 있을 수 있다.)


 또 경조증 편에서도 강조했지만 자기가 판단하지 말 것. 음주, 단약 둘 다 마찬가지이다. 음주는 정말 약마다 불가부가 다르므로 맘대로 마시면 안 된다. 단약도 저번에 말했듯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최악의 경우 이전의 상태보다 증상이 악화될 수도 있다.



모두 완쾌를 외치는 그날까지 약을 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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