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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Oct 13. 2022

어느 날 갑자기

나도 모르던 나

"2형 조울증이네요."


 2시간에 걸친 문답을 작성해 병원에 넘기고 일주일 뒤 들은 진단이었다. "거기에 불안이 조금 높네요." 의사 선생님이 말을 덧붙이셨다. 나는 당시 조울증이면 극단적인 조증과 극단적인 우울증만 존재하는 심각한 정신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당황한 눈빛으로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은 태연하셨다. 주로 공무원이나 선생님들에게도 많이 생기는 질병이고 감정 기복이 평균보다 조금 심할 뿐이니 약물로 충분히 나을 수 있으니 천천히 약을 맞춰가자고 하셨다. (나중에 집에서 2형 조울증을 검색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질환이고 완쾌되는 경우가 많다고 나와 있어 마음이 놓였다.)


 2주 치 약과 갑자기 불안이 심해질 때 먹는 필요 시약을 처방받았다. 추운 겨울, 8층에 위치한 병원에서 내려와 길거리에 서니 차가운 바람과 함께 눈송이가 얼굴에 와닿았다. 한숨을 푹 내쉬고 나니 그간 내가 왜 그렇게 예민했는지, 김치찌개에 들어갈 돼지 고기를 볶다가도 펑펑 눈물을 쏟았는지 수긍이 갔다.


 병원을 찾기 전 나는 자동차를 운전하면 아스팔트 도로가 위로 솟고 옆에 달리는 차들은 다 나를 향해 부딪혀 오는 것만 같았다. 터널을 지난다는 것은 남들이 유난 떤다고 할 정도로 긴장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20분 이상 운전해야 하는 거리는 버스를 타서 눈을 감고 다녔다.

 또 길가에서, 마트에서 모여있는 사람만 보면 나를 보고 수군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지만 그들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는 내가 입은 옷을 비웃고, 내 몸과 얼굴 생김새에 대해 지적하는 소리로 들려왔다. 그래서 아무도 하지 않은 말에 몰래 눈물을 삼키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마음을 다스렸던 적도 종종 있었다.

 나의 조울 증상은 울증이 긴 조울이었는데, (경조증 증상이 이후에 한 번 있긴 했었다.) 무기력이 심해서 하루 종일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는 기분이었고, 당시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는데 인지기능이 떨어져서 수업시간에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아이들 이름을 못 외워서 애를 먹는 일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아프다는 신호였다니,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에 대해 나의 뇌에게 미안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다른 기관처럼 데굴데굴 구르는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기에 그러려니 넘겨짚고 참아온 것이 바보 같았다.


 나는 병원 건물을 나서면서 1층에 자리한 빵집에 들어갔다. 달큼한 빵 냄새가 히터 바람을 타고 코 끝부터 얼어있는 얼굴을 녹여주었다. 빵을 가득 사서 나오는 발걸음은 병원에 갈 때보다는 가벼웠다. 정신질환은 환자가 인지하고 병원을 찾는 것부터가 치료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편견 때문인지 정신과는 다른 병원보다 접근이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정신과 방문에 성공했고 조울증 약을 손에 쥐었다. 나는 앞으로 나아질 일만 남은 것이다. 더 이상 '내가 예민한 사람인가?' '왜 이렇게 바보가 된 거지?' 불안해하고 슬퍼할 필요가 없어졌다. 집에 도착해서 달달한 빵과 우유 한 잔에 평화롭던 일상을 꿈꿔본다.



 방금 전 이야기는 2021년 초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나의 현재 진행 중인 조울증 극복기이다. 2형 조울증은 감정 기복을 그럴싸하게 부르는 것이지 질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 글을 우습게 생각할지 모른다. 처음엔 우리 엄마도 그랬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에는 나와 같은 병을 가지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오랜 투병일지는 아니지만 소소한 내 경험이 그들에게 도움과 공감이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지금 나의 멘탈을 굳게 잡아주었던 여러 취미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앞으로 나오겠지만 지금은 도예에 한창 빠져있는데, 그 이야기도 함께 해볼까 한다. 기대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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