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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Oct 14. 2022

어디 가서 소리라도 지르면 편할 텐데

나도 나를 잘 모르니까

 이제야 조울증에 대해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햇수로 2년째 병원에서 약을 타다 먹고 있다. 이전부터 기록을 남기지 못한 이유는 무기력 때문도 있지만 인지능력이 생각보다 떨어져 있는 상태라 사실 이렇게 길게 글을 쓰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까닭도 있었다.


 오늘은 그동안 약물 치료하면서 힘들었던 점과 도움이 되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제1형 조울증과 달리 제2형 조울증은 울증과 경조증이 반복되는 경우라서 1형처럼 환시를 보는 경우나 환청을 듣는 경우는 적고 감정 기복이 남들보다 예민하게 들쑥날쑥해진다. 그리고 경조증보다 울증이 비교적 길게 나타나고 경조증을 한번, 두 번 정도만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


자료출처: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나 같은 경우는 치료기간 동안 울증 기간이 무척 길었고 의사 선생님과 약을 맞춰 나가는 중에 경조증이 한 번 나타났었다. 처음엔 우울과 불안만 나아지면 일상이 곧 평화로워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약을 먹기 시작하니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러 번의 조율 끝에 현재 이런 종류의 약을 먹고 있다.



 처음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주신 약은 조울증 치료에 쓰이는 리튬(처음에 리튬에 대해 설명해 주실 때 속으로 '리튬? 리튬은 건전지 원료 아냐? 건전지를 먹으라고..?'라며 혼자 이상한 걱정 했었다.)과 항불안제, 항우울제 등 몇 가지 약이었다. 위에 보이는 약은 지금 복용 중인 약인데 절반은 초반과 다른 약이다.

 하도 많은 양의 약을 먹고 다양하게 먹었어서 어려운 약 이름은 다 까먹었다. 그냥 한 시점의 약을 먹었을 때 기억만 남아있다. 맨 처음 처방받은 약은 속이 엄청 울렁거렸다. 취침 전에 먹는 약이었는데 누우면 소주 한 병을 빈속에 원샷한 것처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누우면 집이 통째로 뱅뱅 돌았고, 결국 새벽에 깨서 헛구역질을 하다 다시 잠들 정도였다.


 진료 초반에는 2주에 한번 병원에 갔다. 진료실에서 그간 약이 어땠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상담하면서 용량을 줄여보고 종류도 바꾸기도 했다. 어떤 때는 너무 졸려서 거의 가수면 상태로 살다가 어떤 때는 너무 꿈을 생생하게 꿔서 현실과 꿈을 구별하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잘 맞던 약이 어느 날 부작용이 생기고, 내성이 쌓이는 듯 안 받는 날도 있어서 아직도 약을 맞춰가는 중이다.  감기나 배탈처럼 같은 약 몇 번 먹으면 후딱 낫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약을 맞춰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면서 어려웠다. 매번 다른 용량과 종류의 약을 먹고 나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다 보니 체력도 나빠지고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현실과 꿈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상과 하루 12시간을 자도 눈이 감기는 데 일을 하러 나가야 한다면 어느 누가 힘들지 않겠는가.


 그러 중 안정을 위해 켜놨던 향초의 향기처럼 마음속에서 의문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나아지고 있는 게 맞나?'

 '내면에 응축된 스트레스 덩어리가 전혀 없어지지 않는데 이게 맞아?'

 '요즘 우울증, 조울증 환자는 증가한다는 데 다들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

 

 도시에 사는 환자들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의사 선생님이라면 병원을 바꿔 진료를 받기도 한다는데, 나는 정신과가 마땅치 않은 지방에 살고 있어서 다른 도시로 원정을 다녀야 한다. 심지어 그 도시에도 정신과는 겨우 3군데밖에 없다. 그렇기에 또 다른 병원을 물색해서 먼 길을 다니기엔 시간도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지금 선생님 진료에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바꿀 마음도 없다. 약간 아쉬움이 있다면 지방이라 정신과가 부족해서 환자가 대기실에 가득해서 오랫동안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랄까.


 어쩔 수 없는 지리적 맹점으로 인해 나는 책을 통해 병원에서 차마 물어볼 수 없던 부분과 다른 환자들의 경험을 얻어보기로 했다. 많은 책을 읽진 않았다. 양극성 장애에 대한 책은 우울증에 관련된 책 보다 적기도 하고 우울증과 미묘하게 달라서 우울증에 관한 책은 내가 가려워하는 부분을 제대로 긁어주진 못했지 때문이다. 오히려 심리학 책 보다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 기복을 좀 더 다스리기 쉬워진 것 같다.


 잠깐 다른 얘길 하자면, 만약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분이라면 얇고 가벼운 소설을 읽는 것도 추천한다.  나 같은 경우는 정세랑 작가님의 <지구에서 한아뿐>을 울증 기간에 정말 재밌게 읽었다. 그 기간에는 책 속의 무게감과 우울감이 옮아 더 무기력해지기도 하기 때문에 꾸역꾸역 밝은 해피엔딩 소설을 읽어나가면 그나마 괜찮아진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는 심리학에 관련해서는 총 5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들은 정보 전달도 적절하고 공감할 내용도 많아서 읽기에 적당했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이었던 사람이 있다면 추천한다. 너무 많이 읽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집어 드는 사람들이 하는 걱정이나 생각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목차만 봐도 내용이 비슷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책을 읽다 보면 겹치는 내용이 많이 있다.

 


 <나의  F코드 이야기> 같은 경우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처럼 실제 질환은 가지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이다. 나는 후자의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나의 F코드 이야기>는 다양한 종류의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등장하고 글쓴이의 경험, 의사의 이야기도 나온다. 여러 사람의 경험을 한 번에 접하고 공감과 모르던 정보를 얻기 유용하다.


<내가 나인 게 싫을 때 읽는 책>과 <오늘도 우울증을 검색한 나에게>는 유튜브로 알게 되어 구매한 책이었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인데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유튜브보다 깊게 알 수 있고, 가끔 책에서 따뜻한 위로를 건네 눈물을 찔끔 흘리게도 만든다. 특히 <내가 나인 게 싫을 때 읽는 책>은 쉽게 읽히면서도 한 챕터, 한 챕터 우울증, 조울증 환자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많이 있어서 큰 힘을 준 책이다.


<자존감 수업>과 <홀로서기 심리학>은 앞에 소개한 3개의 책은 질환에 대한 중심적인 내용을 다룬다면 이 두 가지 책은 내면에 부수적으로 남아있는 상처나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 읽은 책들이다.

 <자존감 수업>은 처음 조울증 진단을 받은 날도 의사 선생님께서는 자세히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2형 조울증 이야기를 하시고선 "그리고 자존감이 많이 낮네요."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 자존감은 큰 숙제로 남아있기에 사촌동생에게 빌려 읽게 된 책이다. 정말 공부하 듯 읽었던 것 같다. 학부시절 이공계라  기계 매뉴얼을 통째로 외우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것처럼 나의 자존감 사용 매뉴얼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실전에 많이 도입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홀로서기 심리학>은 사실 초반 내용이 나의 성향과는 좀 다른 내용이라 중간에 읽다 포기했다가 다시 읽은 책이다. 뒤쪽으로 가면 감정 기복 컨트롤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설루션들이 나온다. 의존적인 사람들을 위한 부분은 내게 크게 공감되진 않았지만 결정장애가 심한 사람이나 누군가에게 심하게 의존하는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내용이었다. 나도 가끔 자존감이 낮고 불안이 올라오면 혼자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의존적으로 변하기에 읽었었는 데 완벽주의를 추구하면서 스스로를 혹독하게 대하는 사람들 또한 이 책에서 다루어주고 있어서 그런 사람들에게도 추천할만한 책이다.


 아마 내가 본 책이 혹자는 불호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 잘 맞는 의사 선생님이 있고, 약도 사람마다 다르게 처방받는 것이 정신과가 아니겠는가. 우울하다고, 병원에서 진료를 길게 해주지 않는다고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말자. 오히려 정신건강만 더 악화된다. 그 시간에 서점 앱을 켜고 책을 사서 보고, 유튜브로 자신의 질병에 대해 공부하자. 우리는 아직도 우리 스스로를 잘 모르기에 공부해야 한다. 단약을 축하하며 맘 편히 맥주를 마실 그날까지 열심히 조울증을 이겨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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