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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Oct 29. 2022

뭐라도 해야지

도망가자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 말자

-선우정아「도망가자」中




 선우정아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 솔직하면서도 서정적인 가사와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목소리는 언제나 위로와 안정을 선물해준다. 조울증이 오고 나서 선우정아의 노래 중에 느린 템포의 노래들을 즐겨 들었다. 천천히 말을 거는 듯 건네는 가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위로와 비슷해서 눈물을 쏟기도 하고, 너무 예민해서 잠에 들기 힘들 때는 그녀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들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도망가자>라는 노래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눈물도 많이 뺐으리라 생각한다. 지쳐서 숨 쉬는 것만 겨우 하는 날, 일상이 힘들어서 모든 소리가 소음 같아지는 날 특히나 이 노래의 가사는 마음을 울린다. 그간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버텨라, 이겨내라, 극복해라, 힘을 내라 등만 떠밀던 말들과 달리 "힘들면 잠깐 도망가자.  너와 함께 있어줄게."라고 따뜻한 말을 건넨다. 그녀의 노랫말처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을 때 우리에게도 도망치는 날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음 편부터는 내가 그동안 어디로 도망쳐 왔는지 하나하나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오늘은 그 이야기의 프롤로그로 미리 이야기할 것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우선 조울증, 우울증 등이 후천적 감정기복에 의해 발생한 경우 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병원에서도 1차로 뇌 이상에 의한 장애인지 뇌파검사를 진행하고 신체적 문제가 아닌 걸 확인한 뒤 문답 검사를 한다.) 그럴 경우 스트레스의 원인과 멀어지지 않으면 좀처럼 병이 낫기 힘들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 원인이 인연을 끊을 수 없는 가족이라면? 자식이라면? 아직 로또에 당첨이 안돼서 그만두고 싶어도 좀처럼 그만둘 수 없는 직장이라면?


 어쩔 수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우리가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낫는다. 나 같은 경우는 할머니가 건강이 악화되시고 치매가 점점 심해지시면서 간병을 위해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서 울증 증상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자영업을 하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에, 가족들과는 그새 달라져 버린 가치관으로 싸우기 바쁘고, 잘나가는 주변 친구들은 눈에 밟히고, 그와중에 해야 할 공부는 많고…. 

 

 그렇다고 본업을 내팽개칠 수도, 가족과 연을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도망갈 곳이 필요했다. 할머니 간병을 돌아가며 해야 하니 독립은 아직 어렵고, 그렇다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오롯이 내 시간을 만들어 나에게 집중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내면으로의 도망이었다. 내면으로의 도망이라는 말이 거창해 보일 수 있지만 바꿔 말하면 '취미를 갖자'는 말이다. 


중요한 건 무엇이든 좋으니 스트레스의 원인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포인트다. 







- 취미를 찾아서 -



1. 사주, 타로, mbti 이용하기, 클래스 101 활용하기


 처음엔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취미 생활하면서 그걸로 돈도 벌 수 있는 거 없나?'

 '나한테 맞는 걸 어떻게 찾아야 하지?'

 '이 시골에서 뭘 할 수 있지?'


 그때 엄마가 말했다. 


 "외숙모 점 보러 간다는 데 따라갈래?"

 첫 번째 취미를 발견하게 된 뜻밖의 계기였다. 


 "장군님이 그러는데, 시 쓰는 일이나 작사를 하면 돈 번다고 하네?"

입에는 담배를 물고 한 손으로는 방울을 열심히 흔들던 보살이 말했다.


 "시… 작사… 요? 저는 그런 쪽에 전혀 재능이 없는데요?"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하다 보면 길이 열린다니까 한 번 취미로라도 계속해봐."

 "제2의 김이나 탄생하나?"

 내가 작사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무당의 말에 엄마와 외숙모가 더 들떴다. 


 나도 약간 혹하긴 했다. 용한 점집으로 소문난 곳의 무당이 뜬금없이 진로를 정해줬는데 "혹시 내가 진짜?" 하는 마음이 어떻게 안 생기겠나. (하지만 취미 하나 정하자고 비싼 돈 내고 일부러 점집에 가진 말자.) 관심 없는 척하면 거 집에 들어와서 몰래 작사가 과정을 검색해봤다. 서울에 있는 오프라인 학원만 잔뜩 나왔다. '에잇, 또 나같은 시골사람은 배울 수도 없겠군.' 하며 아무 생각 없이 <클래스 101> 어플을 켰다. 클래스 101에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콘텐츠가 있어서 이것저것 검색하다 보면 하고 싶은 클래스 하나는 발견하기 마련이다. 

 

 검색창에 '작사'키워드를 입력하자 놀랍게도 몇 개의 작사가 과정이 있었다! 물론 이 정도 배워서 데뷔는 어렵지만 코칭권으로 첨삭도 받을 수 있으니 취미로는 할 만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나의 첫 취미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취미를 찾기 위한 과정을 얘기하는 중이니 자세한 내용은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다룰 것이다.


 점집은 보통 싼 곳은 3만 원~5만 원이다. 진짜 있는지도 모르는 신이 나 맞는지도 모르는 사주 때문에 돈 쓰면서까지 도피처를 찾을 바엔  mbti검사를 하자. 성격과 추천 직업, 검색하면 비슷한 만화 캐릭터까지 나온다. mbti결과가 자신과 얼추 맞는다면 설명을 참고해서 취미를 정해도 좋다. 


맨 처음 했던 작사 숙제. 마이클 잭슨-Love Never Felt So Good을 개사했다. 지금 보면 너무 초보적이라 부끄럽기도 하다.
흥미로운 클래스가 많아서 찜한 클래스가 상당히 많다.


 


2. 원데이 클래스 체험해보고 맘에 드는 거 제대로 배워보기

 

 요즘은 동네마다 무슨 공방, 무슨 공방 해서 다양한 공방이 생겨나고 있다. 레진 아트, 도자기, 마크라메, 손뜨개, 비누, 캔들 등등 지도 앱을 켜고 '원데이 클래스' 또는 '공방'을 검색하면 수많은 곳이 예약을 기다리고 있다. 거기다 pt샵부터 골프, 주짓수, 수영, 테니스, 크로스핏, 시티런 등등 등록 전에 체험해볼 수 있는 스포츠도 많이 생겨났다. 처음부터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결정할 필요는 없다. 원데이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 골고루 해보면서 '아, 이건 한 번만 하기 아쉬운데? 좀 더 배워보고 싶다.' 하는 게 생기면 그때 정식 등록해서 꾸준히 하면 된다. 나도 레진 아트, 전사지 아트, 도자기 핸드 빌딩 정도 원데이 클래스 해본 것 같다.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취미를 고를 때 온전히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가, 집중력이 다른 때보다 좋아지는 가를 기준으로 고르면 좋을 것이다. 보통 우울증이나 조울증의 경우 집중력이 저하되고 인지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고 심할 때는 책 한 줄을 여러 번 읽어야 할 정도로 잡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클래스를 듣는 그 시간 만이라도 생각을 줄이고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그 시간을 좀 더 효과적인 도피처로 발전시킬 수 있다.  


 

재밌었던 전사지 아트 클래스. 위에는 다이어트용으로 만들어졌지만 한 번도 다이어트를 위해 쓰이지 못한 슬픈 접시.







◈ 오늘의 주제: 피할 수 없으면 도망쳐라

 

  여기에도 주의사항은 있다. 우리는 발전과 자기 계발이 아니라 휴식과 회복을 위한 도피처를 찾는 중이다. 그러므로 어제까지 재미있던 취미가 오늘은 숙제로 느껴지고 부담으로 다가온다면 과감하게 그만두자. 그 순간 도피처였던 것은 스트레스로 변해버린 것이니 과감하게 떠나보내야 한다.  이건 나의 의견이 아니라 처음 뭔가를 시작했을 때 의사 선생님이 해주셨던 조언이다. 


 "꾸준히 하는 뭔가가 생기는 건 좋은 현상이에요. 하지만 그게 숙제처럼 느껴지고 하기 싫어진다면 하면 안 돼요. 지금은 스트레스를 피하는 게 꾸준히 하는 것보다 중요해요."


맞는 말이다. 남들이 꾸준함을 추구한다고 해서 참고 견딜 필요는 없다. 그 분야 전문가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 병이 낫는 게 목표니까 말이다. 앞으로 나올 나의 도피처 찾는 행보를 참고해도 좋고 스스로 찾아봐도 좋다. 난 지금 좋은 도피처 하나를 찾아서 3개월 넘게 잘 지내고 있다. 이 글을 보고 있을 2형 조울증 환우가 있다면 이 글을 통해 선우정아의 노래처럼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다녀올 수 있는 좋은 도피처를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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