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갈 겸 핸드페인팅
10월에 우리 지역에서는 축제가 있었다. 전통축제여서 우리지역의 많은 공방들이 체험 부스를 만들고 지역시민과 관광객들을 반겼다. 우리 공방에서는 핸드페인팅과 물레체험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아마 그릇에 그림그리기 체험하는 데 만원 이상 쓰기에는 돈이 아까웠다보다. (실제로 체험존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던 것은 2천원짜리 문패만들기였다.)
3일간 열리는 축제이고 해마다 사람이 많이 오는 축제라서 핸드페인팅체험에 쓸 물감과 초벌그릇을 많이 주문해놨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찾기 않아 재고가 상당히 남은 상태였다. 특히 체험가격이 저렴해서 인기가 많을 줄 알았던 수저받침이 제일 많이 남아있었다.
"이왕 많이 남은 거 하나씩 해보자구요."
선생님은 이왕 남은 것 매번 핸드빌딩만 하면 지루하니까 이번엔 그림을 그려보자고 했다. 나는 대학생때 핸드페인팅 공방을 3번 정도 다닌 적이 있어서 핸드페인팅을 아주 조금은 알고 있다. 나는 좋다고 했다.
공방에 계신 다른 분들은 다들 나이가 있으셔서 그런지 얇은 붓으로 난을 치시거나 꽃그림만 그리셨다.
'다들 꽃만 그리시네... 난 그럼 귀엽고 재밌는 그림 그릴까?'
연필을 잡고 곰곰이 생각했다. 수저받침이니 음식이 있는 식탁에 올라가고... 내가 그리고 싶고 좋아하는 것...음식...동물...음..그럼 두가지를 같이 그려볼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수저받침을 각각 4개씩 주셨으니 4종류의 그림 레퍼런스가 필요했다. 핸드폰으로 그리기 쉬워보이는 음식 4가지를 뽑았다. 그리고 내가 그리기 쉬운 동물도 4마리 뽑았다. (코끼리도 후보에 있었는 데 못한게 아쉽다.)
그렇게 4가지씩 뽑은 음식과 동물을 조합해서 수저받침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렸다. 음식과 동물 조합은 크로와상-돼지, 치킨-강아지, 커피-고양이, 밥-토끼로 했다. 이것도 다른 도예활동과 마찬가지로 연필자국은 가마 속에서 사라지므로 연필로 먼저 스케치를 할 수 있다.
그려놓고 보니 생각보다 귀여웠다. 이제 물감만 잘 바르면 된다. 너무 옅게 바르면 붓자국 그대로 지저분하게 되고, 너무 많이 바르면 나중에 떨어져나갈 수 있다. 난 옅게 발라서 지저분해지느니 집하게 바르기로 하고 그림을 완성해갔다.
모두들 귀엽다고 해주셨다. 다들 가장자리에 그림은 조금만 그려서 여백의 미를 살려야 예쁠 줄 알았는 데 이렇게 꽉 채워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보인다며, 사실 내가 그렇게 젊지도 않은 데 역시 MZ는 아이디어가 톡톡 튄다며 황송한 칭찬도 해주셨다. (사실 우리공방은 칭찬감옥이다. 수업하는 2시간 내내 거의 칭찬만 해주신다. 자존감 재활원 같은 느낌.)
칭찬에 힘입어 4개를 완성하는 데 2시간이 조금 안 걸렸다. 오랜만에 즐거운 체험이었다. 유약을 발라 구워져 나왔을 때 확실히 물감을 진하게 바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아쉬웠던건 마지막에 밥토끼를 그릴 때 한글을 썼는 데 그게 라는 그림에 영어를 쓴 것보다 훨씬 예뻤다는 것이다. 아예 첨부터 알록달록 여러색으로 한글 의성어, 의태어를 같이 넣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살짝 들었다.
지금도 이 수저 받침은 우리 집에서 수저받침, 앞접시, 국자받침 등등 다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물레나 핸드빌등 체험이 부담스러우면 이런 핸드페인팅이나 전사지공예 체험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