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메간 Nov 22. 2022

조각조각 따따따

장인의 눈빛으로


 나는 도예 시간 중에서 조각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모양을 만들고, 성형을 거치면서 투박했던 흙덩이가 점점 모양을 갖춰가는 것도 보람이 있지만 그 위에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파내고 색을 입히는 시간은 온전히 내 세상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성형을 마친 주전자에는 백토를 발라놓고 일주일 후에 다시 공방을 찾았다. 그 일주일은 주전자에 뭘 그리면 좋을지 고민하느라 하루 종일 핀터레스트와 구글을 뒤지고, 자기 전까지 그림 연습을 해봤다. 


 우선 전체적인 테마는 꽃, 잎, 나비로 정했다.


 전통문양을 해도 좋을 것 같아 여러 가지를 찾아봤지만 내 수준에서 전통문양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먹지에 번듯한 그림을 따서 그대로 조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핀터레스트에서 적당히 쉬워 보이는 꼭 그림을 고른 다음 내가 편히 그릴 수 있게 조금 수정했다. 


사무실이 바쁘지 않은 시간에는 주전자 크기에 적절한 크기의 그림을 미리 선택할 수 있도록 크기별로 세 장의 그림을 그려봤다. 주전자에 완벽히 옮겨 그리기 위해 연습도 여러 번 했다. 


 내 주전자는 분청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투명 유약을 발라 구웠을 때 푸른빛을 띤다. 그러면 푸른 바탕에 흰 꽃이 피게 되는 데 뚜껑은 몸통과 색채 대비를 이룰 수 있도록 되도록이면 흰 부분이 많고, 잎사귀 같은 무늬가 가득 찼으면 했다. 


 한 시간 뒤, 뚜껑 패턴 구상을 저따위로 한 것을 엄청 후회했다. 예쁘긴 한데, 정말 오래 걸렸고, 생각보다 예쁘지 않았다. 세밀하게 파내서 음각을 하듯 잎사귀를 표현해야 했는 데 실력이 부족해서 이리 보면 거미줄 같고, 저리 보면 멜론 껍질 무늬 같았다. 





 심지어 양쪽에 조각한 꽃 중 하나는 중심이 손잡이 쪽으로 쏠려서 균형이 맞지 않았다. 


 "선생님, 저 약간 망한 거 같아요."


 결국 선생님을 호출했다. 다른 일을 하고 계시던 선생님은 나의 SOS에 하시던 일을 멈추고 오셨다. 


 "뚜껑 조각 괜찮은데요? 나중에 줄기 그리는 거 알려줄 테니까 디자인 보강해서 메간 씨 시그니쳐 무늬로 해도 될 것 같아요." 


 선생님 말씀에 기분이 좋았다. 1시간 넘게 눈이 빠져라 백토를 파내놓고도 망한 줄 알았는 데 생각보다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꽃에 대해선 선생님도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여기 빈 부분에 뚜껑 하고 이어지는 큰 잎사귀 패턴을 새기고 거기다 사인을 넣는 건 어때요? 둥글게 몸통을 감싸듯 위에서 아래로 잎을 그려서." 


선생님은 연필로 대강 어느 정도 크기로 하면 좋을지 알려주셨다. 그렇게 큰 애벌레 같은 잎사귀 하나가 꽃 옆에 자리 잡았다. 흰색으로 사인까지 조각하고 전체적으로 살펴보니 나쁘지 않았다. 




 남은 시간에는 찻잔을 작게 5개 만들었다. 4개가 기본인데 혹시 크랙이 생기거나 깨지는 잔이 나올까 봐 1개를 예비용으로 만들어 놓았다. 잔의 안쪽에도 주전자에 그린 꽃과 같은 디자인을 새겨 넣었다. 


주전자와 세트로 만든 찻잔. 2개는 먼저 가마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진짜 잘했다!


 한 달 후, 주전자와 찻잔 2개가 먼저 완성되어 나왔다. 먼저 상감으로 철을 넣어 구운 나비 부분이 붉게 나왔는지 확인했고, 그다음은 물 구멍이 막히지 않았는지, 물이 물대 끝에 맺혀 흘러내리는지 확인했다. 모두 합격이었다. 


 이번만큼 만족스러운 작품은 처음이었다. 어려웠고, 시간도 제일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예쁘고  "나 도자기 배워."라고 말할만한 느낌의 작품이 나왔다. 


 집에 가져가서도 제일 좋은 리액션을 받았다. "오, 이번엔 진짜 잘했는 데? 온실에서 여기다 차 마시면 진짜 좋겠다." 엄마가 주전자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K-장녀에게는 엄마의 인정만큼 뿌듯한 것이 없기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찻잔. 안쪽에는 꽃을, 바깥은 잎사귀를 재구성한 그림에 사인을 조각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찻잔을 처음 만들어봐서 너무 얇게 만들었던 것? 다음에 다시 만들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정식 핸드 빌딩 커리큘럼은 끝이 났다. 이제부터는 내가 만들고 싶은 것, 선생님이 추천하는 것들을 만들어보면서 실력을 쌓으면 된다. 


겨우 2-3개월인데도 다양하고 재밌는 것들을 배웠는 데 더 숙련된 실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작품이 손끝에서 태어나게 될까? 벌써 기대가 된다. 

이전 07화 손으로 주전자 만들어보신 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