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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Nov 25. 2022

소주는 안 마시지만 소주잔은 만듭니다  

방울잔 만들기

 "메간 씨, 이게 뭔지 알아요?"


 주전자 조각을 마무리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가마에서 꺼내 늘어놓은 생활 자기를 정리하시던 선생님께서 길쭉한 기둥이 붙은 잔 하나를 들어 보여주셨다. 백자로 된 잔이었는 데 위에는 소주잔보다 조금 큰 사이즈였고, 그 아래로는 가운데에 흙으로 둥글려 만든 구슬이 들은 기둥(?)이 달려있었다. 


 "이걸 방울잔이라고 해요."


 선생님이 잔을 좌우로 흔드셨다. 잔의 밑부분에서는 짤랑짤랑 구슬이 벽에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술잔이라 술을 마실 때마다 작게 구슬이 짤랑짤랑 소리가 나는 잔이다. 놀랍게도 방울잔은 신라·가야 시대부터 쓰이던 전통 잔이다. 역시 음주에 능한 민족. 소리 나는 술잔까지 만들다니. 역시 조상님들도 술에 있어선 남다르다. 


 "이번에 이거 한번 만들어볼래요? 백자로 만들어야 해서 핸드 빌딩 하기엔 까다롭지만 메간 씨라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귀여운 술잔을 마다할 리 없었다. 술을 안 마시지만 뭐, 홍삼진액이라도 따라 마시면 됐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마침 친한 친구 2명과 만날 일이 있었는데 셋다 몇 년 동안 남자 친구가 생기지 않고 있었다. 내년엔 우리 셋 다 남자 친구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술잔을 기울였는 데, 그때 각각 2개를 1쌍으로 남자 친구와 마실 술잔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6개. 거기다 속이 빈 방울잔은 실패할 확률이 높으니 예비로 2개를 더 만들어야 했다. 총 8개를 빚어야 했다. 선생님의 잔은 아래 방울이 들어가는 부분이 길어서 같은 모양으로 8개를 만들기엔 너무 힘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납작한 모양으로 짧고 뚱뚱한 잔으로 디자인했다. 각자 주량이 달라서 잔 크기도 다 다르게 만들었다.


 "잔이 꼭 천둥이 닮았는데?"

 천둥이는 우리 집 강아지인데 다리가 진짜 짧다. 그래서 우리 공방에선 자기의 길이가 짧거나 납작하면 다 천둥이를 닮았다고 한다. 내 작고 납작한 방울 잔도 '천둥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 집 강아지 '천둥이'. 다리가 진짜 짧다.




우리 공방은 물레에 특화된 백자토를 사용한다. 백자토는 원래도 분청토보다 잘 부스러지는 데 우리 공방에서 쓰는 건 더더욱 잘 부스러지고 손으로 만질수록 흐물흐물해지고 힘이 없어지는 흙이다. 선생님도 창고에서 흙을 가지고 오셔서 방울잔에 쓰일 흙의 특징에 대해 한번 더 주의를 주셨다. 



 형태는 방울잔이 될 밑부분과 잔이 될 윗부분을 따로 만들어서 어느 정도 마르면 서로 붙여주면 된다. 

주의사항과 만드는 법을 전체적으로 듣고 흙에 손을 올렸다. 


실제로 코일링을 하는 데 분청토처럼 헤라로 모양을 다듬으니 흐물텅거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갈라지고 늘어나더니 축 늘어져 벼렸다. 


30분을 고전했다. 그러면서 요령도 배웠다. 신속하게 흙을 쌓고 물을 많이 발라가며 모양을 잡을 것. 그게 포인트였다. 방법을 알고 나니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방울잔 8개를 만들려면 소주잔의 1.5배 크기의 원통형을 16개를 만들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작업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그다음 주 성형을 해서 매끄럽게 다듬고 밑부분과 윗부분을 붙였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붙이기 전에 구슬을 넣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소리가 새어 나올 수 있게 바닥에 꼬치를 이용해 구멍을 뚫어줘야 한다.


 "붙여놓으니 진짜 천둥이 처럼 귀여운 잔이 됐네."


옆에서 다른 작업을 하시던 분이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내가 봐도 내 잔은 뚱뚱하고 귀여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다루기 힘든 흙이라 물과 칼로는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런 쭈굴거리는 게 핸드 빌딩의 매력이니 나 혼자라도 내 작품을 예뻐해 준다. 



 



백자는 가스가마가 아닌 전기가마를 사용해서 더 일찍 초벌이 끝난다. (전기가마는 작아서 빨리 차기 때문에 가스가마보다 자주 쓴다.) 초벌 후에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준다. 나는 잔 안쪽에 꽃을, 밖에는 나비와 리본, 하트를 각각 그려 넣었다. 


 





2주 후였나, 백자는 전기가마에 소성해서 빨리 나온다. 

공방에 가니 잔이 완성되어 작업대 위에 놓여있었다. 


나는 하나하나 들어서 흔들어가며 방울들이 제대로 소리를 내는지 확인했다.

간혹 구멍을 너무 크게 뚫으면 유약이 안으로 흘러들어 가서 방울을 고정시켜서 소리가 안 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6개의 잔은 짤랑짤랑 귀여운 소리를 냈다. 



불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수축되면서 매끈해 보였던 것도 도로 쭈글쭈글한 모습이 된다. 핸드 빌딩의 손맛이 그래도 녹아든 것이다. 이것도 이것대로 귀엽고 매력 있다. 


이 잔을 받을 친구들은 연말에 만날 계획이다. 내년에는 남자 친구가 생겼으면 하는 친구들의 소원을 들어줄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뭐, 안 생겨도 지금처럼 셋이서 재밌게 지내도 좋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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