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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Dec 12. 2022

커플싸움 막걸리잔으로 베기

커플 막걸리잔 만들기

 친한 남사친이 있다. 공학인 고등학교를 다녔는 데 원래 남자반, 여자반이 나뉘어 있는 학교였지만 이과는 딱 하나의 반만 만들었기 때문에 남녀가 섞인 학급으로 2년을 함께 지낸다. 그래서 이과 친구들은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2년 내내 가족보다 많이 본 가족 같은 사이라 10년이 지난 지금도 진하게 지내는 편인 데 그중에서도 처음에 말한 남사친은 여전히 같은 지역에 살며 자주 왕래하는 친한 친구다.


 그 남사친에게는 연하의 여자 친구가 있다. 체감상 2년, 3년 정도 사귀고 있는 것 같은 데 맨날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결혼 얘기까지 했다가 또 헤어지고 만나고 그러고 있다. 둘이 만남을 유지하는 데에는 그래도 공통점이 있고 서로 놓지 못하는 이유가 있으리라.



 "너네는 결혼 안 해?"


 타 지역에서 결혼하는 친구의 결혼식장에 갈 때 그 친구의 차를 빌려 탄 적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물었다. 


 "결혼? 야... 지금도 또 헤어질 판이야."


 "또? 어제 캠핑 가고 술도 먹고 재밌게 놀았다며, 왜 또."


 "그냥 싸워. 막. 그냥. 좋은 데 또 싸우게 돼."


 "그래도 계속 만나는 게 신기하다. 너넨 맨날 싸우는 데 만나서 좋을 때는 있어?" 


 "우리가 진짜 안 맞거던? 근데 둘 다 막걸리를 좋아해. 막걸리 취향은 다른데 주로 만나서 저녁에 같이 막걸리 마시고 대화하고 하면 그렇게 또 좋을 수가 없다."


 "어이가 없다. 막걸리가 뭐라고." 


 "내 말이 그 말이야."


  친구도 그 시간이 행복해서 맨날 싸워도 여자 친구와 영영 헤어지지 못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 내가 너희를 위해 막걸리 잔을 하나 만들어 주지."


 간소한 자취방에 사는 터라 제대로 된 막걸리 잔에 술을 따라 마시고 싶다는 소박한 소원을 들은 나는 친구에게 막걸리 잔을 만들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젊은 취향과 막걸리의 구수한 느낌, 두 가지가 잘 표현되는 잔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굽이 높은 각이진 형태의 잔을 만들고 안을 깊게 판 다음 백토를 발라 조각을 할 계획을 세웠다. 분청토를 이용할 계획이었는 데 투명 유약을 발라 가스가마에 구우면 분청 색(옥색)이 나오지만 전기가마에 구우면 갈색이 나온다. 막걸리 잔은 갈색이 예쁠 것 같아 전기가마에 소성하기로 했다.  


 기법은 코일링 기법을 이용해 만들었다. 이제 웬만한 것은 다 코일링 기법으로 만들다 보니 잔 두 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듬으면서 각을 확실히 만들어주고 잔이 줄어들 것을 예상해서 내부를 깊게 파냈다.




 흙을 어느 정도 건조한 후에 내 사인은 홈을 파서 상감을 하고, 위쪽에는 백토를 발라주었다. 백토를 바른 후에는 그림을 고민했다. 하트나 커플, 고양이 등등 귀여운 것을 새겨 넣자니 조금 유치했고, 그냥 기하학무늬를 띡 그려주기엔 성의가 없을 것 같았다. 


 헤링본 무늬나 패턴을 하기로 했다. (이때 생각을 잘했어야 했는데...) 

 

 백토가 굳은 걸 보고 조각 디자인을 고민하던 나는 예전에 선생님이 주전자 만들 때 하신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중에 이 패턴을 메간 씨 시그니쳐 패턴으로 해도 되겠어요."


 눈이 빠져라 뚜껑에 나뭇잎을 조각할 때 들은 말씀이다. 그래. 그 패턴이 나를 좀 상징하는 느낌이니까 그걸로 하자. 나는 조각을 시작하고 10분 만에 후회했다. 스케치까지는 수월했지만 작고 세밀하게 수십 개의 나뭇잎을 파낸다는 것은 정말.. 눈이 빠지고 목이 거북목이 되는 과정이었다. 



 잔 1개를 조각하는 데 2시간이 걸렸다. 총 두 개라서 이틀에 걸쳐 4시간을 조각했다. 그 친구는 내가 이 컵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지 상상도 못 할 것 같다. 인스타에 조각을 끝내고 스토리를 올렸다. 본인도 만들어 달라는 지인들의 DM을 여러 개 받았다. 한번 해보니 어려워서 무료는 안된다고 거절했다. (이래 놓고 친한 지인의 집들이나 특별한 날엔 또 선물을 만들고 있을 모습이 선하다.)




소성이 완료되었다. 원래 전기가마로 해서 갈색빛이 나게 할 생각이었는 데 선생님께서 깜박하시고 가스가마에 집어넣는 바람에 분청 색으로 나왔다. 내가 조각도 너무 얇게 하는 바람에 바람만큼 예쁘게 나오진 않았다.


그래도 다음 주쯤 친구에게 전해줄 생각이다. 그래도 거의 한 달 동안 친구 커플을 생각하며 만든 잔이니 받는 친구가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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