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inama] 오늘도 한 장 더 큽니다
코로나가 사건을 넘어 일상이 되어가면서 2년 여간 활발히 활동했던 뮤지컬 동호회 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춤과 음악과 술이 난무하던 광란의 주말은 소강상태로 돌입했고, 갑작스러운 한가함은 공허함을 유발했다.
평일 저녁 틈틈이 보러 다니던 공연들까지 줄줄이 취소가 되면서부터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 딱히 원치 않던 여가시간이 주어졌다.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서럽게 울어댔다던 유별난 어린이는 심심할 세 없이 할 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어른으로 자라나, 빠르게 다음 놀 거리를 찾아 나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야심 차게 사놓고 바빠서 손도 대지 않았던 보석 십자수였다. 40*50 사이즈가 얼마나 큰지, 나는 한 시간이나 코딱지만 한 구슬을 한 땀 한 땀 박아 넣고서야 깨달았다.
허리 한 번 못 펴고 찍어냈는데 한 시간의 결과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하기 그지없는 완성도를 보며, 벌써 쑤셔오는 어깨와 허리를 주먹으로 툭툭 달래며, 나는 현타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1~2주에 걸친 노동 끝에 완성은 했지만 약간의 뿌듯함, 그리고 상당한 고통을 경험한 후 강렬한 추억과 함께 보석 십자수는 취미에서 종결시켰다. 열흘여 간의 노동을 마친 후에는 고되지 않은 할 거리를 찾겠다며 안 보던 유튜브도 보고, 당구장도 가보고, 넷플릭스도 열심히 뒤적거려 봤지만 딱 꽂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정착한 건 무난하게도 독서였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꽂히면 한두 달 반짝 열심히 읽다가 또 몇 달 동안은 한 장도 들춰보지 않는 간헐적 독서가였던 나는 아주 오래간만에 책에 꽂혀 부지런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그 책에서 소개하는 책이라던가, 소설 속 인물이 좋아하는 책, 아니면 읽고 있는 저자의 다른 책 등등 읽고 싶어지는 책이 많아지는 법이라, 책을 읽고, 읽으면서 또 다른 책들을 구매하는 비효율적인 습관도 생겼다. (읽는 속도는 사는 속도를 절대 따라갈 수가 없다)
그게 벌써 몇 개월이 되었고 다이어리에 기록할 완독 도서가 늘어나는 뿌듯한 일상이 계속되면서, 2021년의 반 정도를 보내고서야 나는 2021년의 목표를 세웠다. 1년 동안 책 100권 읽기.
그러려면 한 달에 8~10권 정도의 책을 읽어야 하는데, 독서 속도가 빠르지 않은 내게는 상당한 노력을 요하는 수량의 목표였고, 이북리더기까지 새로 장만하며 나름 열심히 읽었지만 업무가 쌓이거나 자꾸 일정이 생겨 목표치를 채우기 벅찬 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권수를 늘리기 위한 꼼수로 종종 일부러 얇고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는데, 그 덕에 평소에 잘 읽지 않던 에세이 장르의 책을 몇 권 읽게 되었다.
그마저도 내가 읽고 싶어서 구해 읽은 것은 아니었고 회사 도서관에 들어와 있는 책 중에 읽기 만만해 보이는 걸로 집어와 읽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알량하게 쉬어가려던 독서 타임에서 나는 팩트 폭격을 당하고야 말았다. 책을 주제로 한 에세이집에서 ‘독서량’을 두고 이야기하는 챕터였다.
자신의 독서량을 자랑하는 이들을 보면 이성 교제 횟수를 자랑하는 고등학생을 보는 것 같다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독서의 질에 자신이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이야기였다.
열일 하던 눈을 잠시 멈추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요즘 나는 엄마에게 전화가 올 때마다 이번 달에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빼놓지 않고 보고하고, Z에게는 매달 월말에 “이번 달에 책 몇 권 읽었게?!”를 시전 중이다.)
음... 이거 내 얘긴가...?
물론 날 저격하겠다고 쓴 글은 절대로 아니지만, 나 같은 사람을 저격해서 쓴 글일 테니, 내 얘기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책 권수 늘리자고 읽은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으니 왠지 더 뜨끔했다.
자랑할 만큼 대단한 독서량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건설적인 청년다운 목표를 세워 열심히 실천 중인데 어쩐지 서운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정신승리에 굉장한 재능을 지닌 사람인지라 이깟 타격에는 금세 아랑곳 않고 정신승리를 하기 시작했다.
기왕 읽는 거 자랑도 좀 하고 애서가 시늉도 좀 해보고 하면 좋지 그렇게 딱 잘라서 자랑하는 사람은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릴 필요가 있나.
내 독서의 질이 양질인지는 모르겠지만 책 읽는다고 그걸 다 기억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있다고.
저자는 다독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두꺼운 책들을 피하고 읽기 쉽고 얇은 책들만 골라 읽는 것 아닐까 하는 나름 합리적인 의혹을 제기한다.
뭐, 가끔 그런 짓을 하기는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이 잠시 고갈되었거나 권수가 한 두 권 모자랄 때 채우려고 잠시 꼼수를 쓰는 거지 권수만 채우려고 독서를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자랑질 좀 한다고 독서의 질과 목표와 의미를 획일화해서 저평가하다니,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그건 너무나 편협하기 그지없다고, 성급한 일반화라고 이런저런 변명과 합리화, 핑계들을 열심히 늘어놓다가, 이런 일로 혼자 열 내고 있는 내가 퍽 치졸해 보여 그만두었다. 이거야말로 도둑이 제 발 저린 꼬락서니가 아닌가.
생각해보니 적절한 화해 방법이 영 없지는 않을 것도 같고.
그래, 뭐 좋다. 그렇다고 치자. 이성교제 횟수를 자랑하는 고등학생처럼 미성숙한 독서가면 뭐 어떤가. 독서 청소년이라니 풋풋하고 좋지 뭐. 원래 미성숙과 풋풋함은 한 끗 차이다. 치졸한 사람과 풋풋한 사람 중 나는 쿨하게, 풋풋한 사람이 되기를 택한다.
오늘도 책장을 편다.
현재 스코어 62.
독서 청소년은 한 장, 한 장 무럭무럭 크는 중이다.
기왕 자랑하기 좋아하는 거 탄로 난 김에 눈, 어깨, 허리 건강과 맞바꾼 보석 십자수를 자랑해본다.
생각보다 꽤 뿌듯하고 볼만하다.
수납장에 처박혀 있어서 자주 볼 수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