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꽃고무신 신던 소녀가 동생들의 엄마가 되기까지
내가 58년도 봉황서국민학교 9회 졸업생이었어.
학생들은 한 반에 남자 여자 합해서 40명에서 45명 정도 됐어. 그때는 한 학년에 한 반뿐이야.
어릴 때는 그냥 친구들하고 학교 댕김서 즐겁게 놀기만 한 기억밖에 없어.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하고 막 고무줄놀이도 허고, 바울 따먹기(비석치기)도 하고, 뺌 재기(뼘내기, 사기그릇 조각 같은 걸로 던져 뼘으로 거리를 재는 놀이) 허고, 그러고 막 저 동네 이 동네로 놀러 가고.
학교 댕길 때까지는 아버지가 다른 동네로 갔다 오는 거 허락해 줬어. 근께 학교 시절이 가장 좋았제.
옛날에는 엄마들이 밭에 일하러 가잖아. 근께 학교 갔다 오면 이제 동생들 돌봐야 돼. 그것이 숙제여. 학교가 가까우니까 우리가 몇 시에 온다는 것을 엄마들이 다 알아. 근께 “빨리 오니라 빨리 오니라” 그러제. 어려서 항상 바로 집에 들어갔지.
학교가 집에서 5분 거리였는데, 학교 좀 멀었으면 했어. 놀다 집에 가게. 하하.
그땐 학교에서 배우는 게 국어, 사회, 산수, 음악 다섯 과목인가 밖에 없었어.
내가 한 번은 수업 시간에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한테 들켜부렀는데, 선생님이 “김정임!”하고 부르면서 갑자기 산수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나 낸 거야. 그때 가심이 막 두근두근했는디, 내가 그 답을 딱 맞춰부렀어. 와따, 그때 한번 혼났다. 하하하. 산수가 점수도 제일 잘 나오고, 풀어나갈 때 답을 딱딱 맞추는 재미가 있었어.
나는 욕심도 겁나 많앴어. 항상 달리기도 반 대표로 나갔어. 언제 하루는 2등 했는데 오직허먼(오죽하면) 저녁 내 ‘내일은 내가 기어이 1등 나부러야지’ 그런 마음을 먹고 잠을 안 잤당께. 어쩌든이 칭찬 속에서만 살라고 어려서부터… 뭣이든 남 뒷 서기가 싫어.
내가 그때 열네 살에 국민학교를 졸업했을 거야. 그때는 초상난 것만이로 슬퍼서 울어. 졸업식 노래 부르면서도 다 우니라고 노래를 끝까지 못 불렀어, 여자들이 주로… 인자 다시 못 만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때 친구들 중에 중학교 간 여자애들은 한 서너 명이나 될까?
내 자존심이 있어 갖고 그 애들은 상대하기가 싫어. 그 애들이 공부할 때 모른 것을 나보다가 답을 다 갈쳐주라고 했어. 겁나 부잣집 애기들도 있었어. 김순덕이라고, 그 애한테 답 갈쳐주믄 그 애가 막 연필도 주고 지우개도 주고 다 그랬지. 지금 같으면 뇌물이야 뇌물.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