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레몬

by 김간목

산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그래서 도리어 발밑만 보고 걸었던

그 날은 도토리가 많았지

그래서 알았지 필레몬

여기는 당신의 성전이었구나

모자는 벗겨지고, 벌레 먹은 기도로

당신은 누굴 먹이고 있었지?인적도 없는 이곳에서


잘못 든 손에게 당신은

여긴 사람 올 이 아니라 하네

군홧발이, 가을 하늘이, 끝없는 낙엽, 비탈길이, 그리고 무수한 낟알과 바람결이

다 같이 경을 외워대는 소리가 두려워 나는

헐레벌떡 등산로에 다시 들었지, 산을 다 내려와, 이제 씻고 시방 내 차가운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 엎드려 눈 질끈 감으면,

불 꺼진 성당이 종을 열한 번 울리고

나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고야 말지


낙엽 사이 무수한 당신의 헤아림이

이제는 두렵지 않 부끄럽다

세상의 끝에서 돌아왔구나

첫닭이 울기 전을 쉬고 있구나

산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그래서 도리어 발밑만 보고 걸었던

그 날 참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더라면

귀라도 대어보았을 것을

당신의 신심은 겨울을 어떻게 나지

필레몬,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정말로 가난한 사람은 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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