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그래서 도리어 발밑만 보고 걸었던
그 날은 도토리가 많았지
그래서 알았지 필레몬
여기는 당신의 성전이었구나
모자는 벗겨지고, 벌레 먹은 기도로
당신은 누굴 먹이고 있었지?인적도 없는 이곳에서
길 잘못 든 손에게 당신은
여긴 사람 올 곳이 아니라 하네
군홧발이, 가을 하늘이, 끝없는 낙엽이, 비탈길이, 그리고 무수한 낟알과 바람결이
다 같이 경을 외워대는 소리가 두려워 나는
헐레벌떡 등산로에 다시 들었지, 산을 다 내려와, 이제 씻고 시방 내 차가운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 엎드려 두 눈 질끈 감으면,
불 꺼진 성당이 종을 열한 번 울리고
나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고야 말지
낙엽 사이 무수한 당신의 헤아림이
이제는 두렵지 않아 부끄럽다
세상의 끝에서 돌아왔구나
첫닭이 울기 전을 쉬고 있구나
산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그래서 도리어 발밑만 보고 걸었던
그 날 참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더라면
귀라도 대어보았을 것을
당신의 신심은 겨울을 어떻게 나지
필레몬,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정말로 가난한 사람은 나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