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내 빈 속으로 당신을 먹였소
이제 나는 재활용을 떠나려 하오
우리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 줄은 모르겠으나
반드시 그 때엔 또 다른 쓸모로 다가오겠소
그대여 우리가 세 끼를 함께하며
뜨거울 때나 차가울 때나 기름기가 다 굳어갈 때에나
나를 곧바로 버리지 않고 쌓아둔 것에 감사하오
무정한 당신의 게으름이 간혹
누군가의 휴식이 됨을 아시오?
살아 움직이는 그대여,
나도 한 때는 나무 줄기였으며, 잎이었으며, 부엽토 그리고 그 안을 사는 굼벵이였으며, 별식을 얻은 전갱이였거나, 혹은 다 썩은 물이거나, 누군가의 시체이기도, 때로는 먼 바다의 구름이기도, 또 한 번은 비에 육실허게 젖어드는 음식물 쓰레기이기도 했소
한정 없는 윤회의 바람 속을 내가 부름만으로 떠돌아다니던 어느 때,
나는 한 피자체인에서 쓸모를 얻었소
현생의 쓸모 없음을 슬퍼하는 그대여,
당신도 곧 이처럼 되리니, 잃음을 슬퍼 마오
대저 쓸모란 무릇
상자의 밖에서 오는 게 아니겠소?
속을 채우거나 비우는 그런 사는 일들을 죄 싸잡아다가
한두 마디
쓸모로 우리는 주문하는 모양이니
부디 엇나감을 슬퍼 마오
그러니 스스로의 상자인 그대여,
일어나시오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는 헤어집시다
물론 나야 저 추운 영하의 초겨울 몇 밤 정도는 재활용 쓰레기통에서 지새워야 쓰겠으나
피차 별반 다를 것도 없지 않소
그러니 내 빈 속을 얻어간 그대여,
스스로 내버릴 곳이 정해져 있다는 게 기적 같은 일임을 알아두시오
이제 시간이 됐소
언젠가 쓸모가 있을 그런 쓰레기를 내버릴 시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는 헤어집시다 안녕
서로에게 배고픔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여
안녕
거듭 서로를 스쳐주는 옷깃들이여 안녕
영원을 돌리는 파편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