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나와 당신의 사이에
얇은 막으로 또 불투명한 벽으로
팔랑팔랑 까부는 한 장에
무언가를 쓰면 비쳐 보일까
구기고 접어 내 마음 보일까
또 뭐가 있을까 어라, 백지 너머
있을 당신을 나는 왜 설득하려 하지
생각도 안 했다 백지 나와 당신 사이에
촘촘하게 짜여 표백이 된 나무의 세월에
자라나는 문장을 내가 구태여 적을 필요가
첨부터 있었던 것인지
백지 나와 당신의 사이에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물을 한 방울 떨궈두었다
써둔 문장들의 오버레이로
좀처럼 되돌릴 수 없는 아날로그로
막과 벽의 이쪽 저쪽에서
물방울 하나씩을 떨구며 우린 서신을 나눈다
이러다 찢어지면 어쩌지
문장이 다 번져지면 어쩌지
그 우그러짐이 시작도 아니 할 때에 잠시,
이제 그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낙수에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