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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Jan 11. 2023

단면들

"브로커"를 보고 나서

송강호가 이 영화의 축crux이다. 그는 필요했다가, 필요 없어진다. 그리고 필요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영화는 불교적이다 - 가차 없다. 너그럽네 어쩌네 하는 시네마필들은... 미안하지만 인생들을 낭비하셨다고 생각한다.


스크린에서 부산 냄새는 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사 역시 그렇다.


빗방울 맺힌 차창에서, 빨간 꽃잎을 배두나가 거둬가는 장면을 나는 가장 좋아했다. 감독의 바람이 담긴 장면이 아닐까 한다.


그 다음으로는 터널로 기차가 들어가며 청산의 풍경을 공중에서 잡아준 연출을 좋아했다. 한 순간에 관객의 심중을 들끓게 만드는 마법이었기 때문에.


배두나가 길게 통화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거짓말 같은 리얼리즘이 이 감독의 취향인가 하는 생각이 이 장면에서 들었다.


터널은 곧 산도이다. 이처럼 잘려나간 단면들이 지나치게 깔끔해서 도리어 불편했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너무 크다 - 마치 영화음악 처럼.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잔잔하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 매 순간 누군가 죽을 것만 같아서 조마조마했는데도? 사바세계는 정말 너무 위험한 곳이다.


중학교 때 이 영화를 봤더라면 좋아했을 것 같다. 인간적 성숙을 마냥 좋게만 보는 것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온다 (따라서 어른이 되지 못한 채로 늙어가는 이들의 오만이기도 하다).


앞서, 불교적인 영화라고 했는데, 묘하게 다음 싯귀가 생각난다:


라틴어로도, 또는 어느 나라 말로도 거듭
용서해달라는 노랫말이 아프기만 하다.

- 마종기, "그레고리안 성가1"


정작 리얼리즘은 영화 밖에 있다. 정확히는 스크린과 평단의 사이에. 그러므로, 좋은 감독이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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