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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Feb 07. 2023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라, 뉴욕

돈을 내면 도시는 잠시 품을 내어준다

남쪽으로 내리막길 이어지는

도시의 가장 낮은 곳

나는 내 가슴 속을 걷는다

행인들을 피해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스치는 우리,

갈짓자로 걷는 이들도 구태여 함 쏘아보면 우리,

서로 다른 고통을 공유하는 한 때가 아닌가


내 집, 남서쪽, 멀리 해가 지는 곳,

강을 건너면 공기가 다르다지

한숨이 많은 나는 잘 모르겠다만

열렸다 닫히는 문을 잡아주며

공연함과 울분이 돌아가는 회전문을 맞잡고 밀어주며 우리,

잠시간 도시의 폐부에 붙었다 나가떨어지는 모습들이

담배연기를 닮았구나


밤 속으로 구름처럼 구름들이 사라진다

해가 진 뒤에서야 오늘도 나를 죽이지 못했다고 나는 원통해하고

나를 죽이지 못한 것들이 나를 강하게 한다 말하면서

그 책임을 다 내 미간에다 얹어놓는 뉴욕에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는

오늘 몇 개의 문을 열고 닫았을까


문에 기대지 마시란 말에

벽에 기대면 뭐가 열리나요, 라 묻는 삐딱한 내게

좋은 일이 있으리라 스쳐가며 속말을 건넸던

피로한 이가 하나쯤은 있었겠지 이 도시

모두가 길바닥에 몇 분 정도는 나앉는, 나름 평등한 곳


사각형 건물들은 어째선지 점점 각을 더해가고...

나는 어금니를 다무는 법을 잘 알게 되었다

너도 가운데 손가락 하나

나도 가운데 손가락 하나

이게 남았네 가슴 속에 그래도 아직

가운데 손가락 하나가

내 가운데 손가락 하나가

나에게 걸리적거리지 말고 좀 꺼지라며

무언가를 주저하려던 나를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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