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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Mar 14. 2023

대로변에 내놓은 쓰레기봉지들이 투둑투둑 흐느끼는 밤

오늘이다, 호우주의보가 뉴욕에

비처럼 내렸고

처음으로 지하철 역 땅바닥에서 나는

주사기를 쓰는 사람들을 봤다


당신들은 마음 속 구멍이 바쁜 사람들이군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나는 이어폰을 꺼내고 말았다


웰컴 투 소사이어티

돈 폴겟 투 릳 더 룸

디스 이즈 컬 그렝 자이 피-스

레서피 포 하모니*


지하철은 금방 왔다

Phum. 당신의 도시도 그런가

낡고 낮아서 뉴욕 지하철은 곧 부서질 것만 같다

좁고 좁은 갱도

달릴 수록 바빠지는 빛, 그리고

눈부신 소리


다시 비를 맞으러 나오면 보이는

불을 켜 놓은 23가 클럽 모나코, 그리고 내가 이름 모르는 가게들

하나씩 지나가면서도 나는

무언가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뭐였지

내가 이 도시를 좋아했던가,

어거지로 짜낸 물음이

구멍 뚫린 하늘 아래, 이제는 불 꺼진 상점들 앞을 떠돌았다


대로변에 내놓은 어떤 쓰레기봉지들이 비 맞으며 흐느끼는 밤이었다

도대체 무슨 물음이었지?

뉴욕에 금반지와 금목걸이는 도대체 몇 개나 있는지

그 중 몇 개의 손가락들이 이 쓰레기봉투들을 내버렸을지,

고작 그 따위 물음이었을 수도 있고...

(그런 게 왜 궁금해요? - 또 다시, 임의의 당신이 묻는다)


그리고 9시가 지나, 문을 닫고 있는 트레이더 조‘스 앞에서 나는 비로소 생각이 났다

나는 포도를 사러 가려 했었다


강을 건너 집으로 가려면 나는 또 한 번 지하철을 타야 한다

이 산도를 지나는 사람들은 매일 지친 정도가 조금씩 다르다

일례로 건너편에 앉은, 하루의 끝에 장렬하게 눈을 감고 있는 저 아저씨는

운동화에 시멘트가 어지러이 묻어있지


결국 나는 포도를 사러 가야 한다


*Phum Viphurit, "Greng Jai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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